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운문 소식

학감스님 기사 -매일신문 [3040광장] 행복하게 사랑하며 산다는 것-

가람지기 | 2008.04.05 15:00 | 조회 4525

「3040광장」 행복하게 사랑하며 산다는 것


산과 들판엔 벌써 봄소식 완연…우리 맘속 나눔의 싹도 틔우자 겨울 내내 아무것도 살려내지 않을 것 같았던 凍結(동결)의 땅 겨울 산중에 어느덧 눅눅해진 듯한 흙 기운을 새벽 예불 길에서도 느끼게 되니 벌써 봄을 기다리는 마음인가 보다. 달력상으로만 한해 바뀜이 아니라 떡국차례 올리며 구체적으로 나이를 먹는 설날이 지난 지도 오래고 달력은 명실공히 3월이라는 산뜻한 이름을 달고 올해의 봄은 어김없이 또 시작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에 선진화 원년 선포와 함께 7천만 민족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리라는 국민적 기대가 어느 때보다도 큰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기대는 무엇보다도 경제 살리기에 모아져 있는 듯하다. 통치의 기본이 모든 국민을 두루두루 잘 살게 하는 것이라는 점은 예로부터 불변의 진리이다. 세상은 모두 어렵다고들 걱정한다.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일자리가 여의치 않아서 힘들어한다. 그래서 이 봄에 새롭게 출범하는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클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대가 크고 희망적이라 할지라도, 설사 주변의 조건이 잘 조성되어 나의 기대와 희망에 부응하여 잘 살아가게 해준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이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대개 자기 소원을 이루지 못하거나 복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주변상황에 책임을 돌리며 화를 내거나 원망한다. 심지어 “내 부모님들은 왜 내게 좀 더 좋은 조건을 물려주지 못해서 이렇게 힘들게 할까? 나는 왜 힘 있고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며 부모를 원망하기까지 한다.


정치하는 분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 풀리지 않으면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언론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등등으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제 봄이 왔다. 겨울 다음의 봄일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제 인생의 찬란한 봄을 맞이해야 할 차례이다. 이 봄은 육신의 나이에 관계없이 한 생각 불쑥 일으키기만 하면 언제나 老少(노소)를 막론하고 새롭게 피어나는 신비한 시절인연이다.


이 봄에 우리는 깊이 잠재해 있는 아름다운 심성을 개발해야겠다. 그래서 보다 풍요로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사람의 심성은 마치 샘물과 같아서 퍼낼수록 맑게 고이게 된다. 퍼내지 않으면 탁하고 상하게 된다. 많이 퍼낼수록 많이 고이게 된다. '나누어 가짐'이라는 것은 반드시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자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한번, 또 함께 걱정하고 기뻐하는 것도 나누어 가짐이다.


이렇게 보면 많이 차지하고 있다고만 해서 부자가 아니라 많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자인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어 가질 때 그 즐거움 자체가 이미 보상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왕에 나눌 바에야 즐거운 마음으로 선뜻 나누어야 한다. 기쁨이 없는 나눔과 봉사는 하는 이도 받는 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행복하지도 않다.


주는 일 자체가 받는 일이므로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주고 싶어서 줄 뿐, 사람은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자신 속에 잠들어 있는 인간의 심성을, 불교에서 말하는 佛性(불성·부처의 씨앗)을 싹틔우게 하는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에 이름 석자 내려는 생각도 없고 어떤 의무감에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크게 덕행으로 여기는 생각조차 없이 무심히 나눌 수 있다면 그런 사람들의 손을 통하여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그들의 뒤에서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실 것이다.


마치 산길을 걷다가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무심히 하는 일이 우리를 오히려 눈뜨게 한다. 봄바람이 자연스럽게 메마른 가지에 잠든 움을 틔우듯, 한다는 생각 없이 하는 일들은 넉넉하고 범위가 넓으며 피차에 부담도 없다.


너무 크게 기대하지 않을 때 그만큼 실망도 적다. 행복하게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결국 나누는 일이고 주는 일이다. 나누면 나눌수록 넉넉하고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깃든 아름답고 어진 인간 내면의 뜰을 가꾸는 가장 소박한 행위인 것이다.


자연의 봄 3월, 우리들 모두의 인생의 봄, 그리고 대한민국의 봄. 지난겨울 감추었던 제 빛깔들이 다시 번지고 맨땅의 밭이랑에 새싹이 돋아나듯 우리 모두 따사로운 봄빛에 나눔과 사랑의 싹이, 신뢰와 존경의 새싹이 튼실하게 피어나는 봄을 맞이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일진스님(운문사 승가대학 학감)




unnews_1207375246_62.jpg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