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깨침과 깨우침_주형스님

최고관리자 | 2012.07.26 11:10 | 조회 3597



깨침과 깨우침


사미니과/주형

먼저 이 자리에 법문을 할 수 있게 해주신 불보살님께 지심귀명례 합니다.
둘째로 은사스님과 부모님께 지심귀명례 합니다.
셋째로 여기 모인 어른스님, 대중스님, 도반스님께 지심귀명례 합니다.

저는 올해 쉰 두살 치문반 백씨 주형입니다.
출가하여 계 받고 운문사로 오기까지 3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발심하여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늦게나마 시절인연이 닿아 수행자의 길을 걷게 해 주신 부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 ‘깨침과 깨우침’을 주제로 법문하고자 합니다.

깨진다는 것은 ‘부서진다’ 또는 ‘깨어져서 사라진다’라는 뜻입니다. 출가 후 저에게 있어서 ‘깨짐’이란 속가의 습을 버리고, 승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는 지나온 행자의 길을 생각해 봅니다. 5년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절에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서 스님들의 가사를 수하고 예불하고 경을 읽는 모습에 너무나 환희심이 발했습니다. 엄숙한 위의로 한 말씀, 한 말씀 하시는 매 순간마다 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께서는 저에게 속가의 연이 다 되었으니 그만 출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 저는 아연실색하고 말았습니다. 50년 살아온 모든 것들을 하루 아침 정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출가인연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삶의 무상을 느끼며 양희은씨의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 , 김정호씨의 <하얀 나비> 등을 즐겨 부르면서 외로운 사춘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도 채워지지 않는 삶에 환멸을 느꼈으나 머리를 깎고 승이 된다는 것은 생각도 아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집안 종교는 불교이지만 석가탄신일이나 특정한 행사 때 보살님 손잡고 비빔밥이랑 사탕먹던 기억과 성인이 되어서는 대웅전에 들어가 참배하고 나온 것이 전부인 저에게 정리하여 스님이 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인정하였습니다.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앞으로의 삶도 이대로라면 차라리 지나온 업장을 소멸하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마감하면서 가족의 행복을 빌어보자고 결심한 후 그 길로 행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작을 하고 보니 그 동안의 살아 온 습관이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행자가 할수 있는 말은 “네”, “잘못했습니다”, “~해도 되겠습니까”, “뭐하면 되겠습니까” 정도였습니다. 또 상반 스님이 하라고 하는 것만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행자는 어떠한 변명이나 결정도 할 수 없고, 그냥 시키는 것만 잘 하면 된다고 하고선 습의를 시켜주셨습니다.

그러나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가 않다보니 날이면 날마다 아침, 점심,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경책을 받았습니다. 또 절집은 들어오는 순서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윗 차서 아래차서가 구별됩니다. 저는 나이가 많아도 막내였습니다.
습의(習儀), 즉 거동을 익히는 것, 말하자면 그 동안의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의미를 인정하지 않은 채 많은 습의를 받다보니, 무척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속가에서 보던 스님의 고귀한 모습 등 여러 가지 환상만 가지고 출가한 저로서는 행자생활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일명 ‘깨지기’, ‘깨지는 날’이 수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알에서 깨어 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견디다 못해 ‘더 이상 나는 스님이 될 자격이 없구나, 나랑은 인연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마침내 절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법당에 가서 3배를 하고 나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가, 이것저것 제대로 배워 보지도 않고 중도에 포기하려고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내 자신이 이것 밖에 안 되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오기가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계는 받고 보자’라고 마음을 굳게 바꾸어 먹고 다시 발심을 하였습니다.

‘깨짐과 깨우침!’
어느 날 사중의 스님이 쓰신 책 속에 이 글귀를 발견하고 무척 놀랬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깨지고 나면 깨우침을 알게 하면서 깨달음! 피안의 저 언덕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를 관통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저의 부친은 군인이었습니다. 이에 6하원칙에 맞게 살게끔 철저하게 집안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6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이 늘 몸에 배어 그 틀 속에서 살다 보니 절집 생활을 하면서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분별심, 망상, 번뇌 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아만과 아상으로 가득 찬 저 자신을 향해 쓴 글귀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만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깨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하였을까 생각하니 한 분 한 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어떤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아~, 모든 문제는 항상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금방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忽至百年이어늘 云何不學이며 一生이 幾何관대 不修放逸고? 홀연히 백 년이 지나거늘 어찌 배우지 아니하고 일생이 얼마길래 어찌 닦지 않고 게으른고! 제가 항상 지치고 힘들 때마다 마음에 되새기며 재발심하는 구절입니다. 어느 날 도량석을 하는데 좀 더 일찍 출가 했더라면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와 더욱 더 목청을 높여 울면서 도량석을 돌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반 일찍 출가한 막내스님, 너무나 의젓함에 보기만 해도 신심이 나고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납니다. 그래도 저의 일생에서 가장 잘한 것은 바로 출가입니다. 아마 출가를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후회했을 것입니다.
강원! 운문사! 그토록 목매이게 기다리던 운문사입니다. 운문사를 너무 동경한 것은 피부도 뽀얗고 예쁜 젊은 스님들이 공부하고 수행하는 모습이 절로 신심난다는 소리에 나이 많은 저도 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함이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그런데 강원에 오고보니 역시 여기서도 경책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대신 이곳에서는 경책이 아닌 걱정이란 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걱정이라는 말이 훨씬 온유하게 다가왔습니다. 스승이 제자를, 부모가 자식을, 형이 아우를 걱정하듯이 하는 상반스님의 그 걱정들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순간순간마다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스스로에게 너무 감사하고 또 행복합니다.

싱그런 새벽 바람! 가슴이 확 트이는 주변 전경들에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납니다. 또한 저녁 예불을 마치고 상반스님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문득 그 행렬 속의 저 자신을 발견할 때 심장이 멎는 듯 행복합니다.
이 곳에 오니 백씨라는 명패와 반장이라는 소임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백씨가 4년, 아니 졸업하고도 계속 이어지는 영원한 큰 소임인 줄은 몰랐습니다.

당시의 무식함은 그때 책을 읽다가 보니 스님 분들이 하안거나 동안거때에 결재 하러 간다는 구절에 얼마나 계산 할것이 많으면 결재를 하러 줄지어갈까 그 정도로 무지였습니다. 그런 저를 이곳 운문사에 보내주신 은사스님! (사실 저의 은사스님의 강원은 봉녕사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얼마 전 봄 방학때 반야심경 마지막 강의 말씀에 회주스님께서 “여러분, 여기 모인 전부가 부처님인데 우리 모두 다 관세음보살이 됩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내가 과연 백씨로써 잘 살았는가, 관용과 보살의 정신과 포용력과 자애와 자비의 마음으로 반 스님들을 대했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 백씨, 반장, 회계라는 소임을 위해 허둥지둥 정신없이 110일이라는 첫 철을 달려왔을 뿐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도반스님들께 진심으로 발로 참회합니다. 그동안 망어, 기어, 악구 등 탐진치 삼독에 끄달려 도반 스님들 마음고생을 시켜서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끝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도반스님들! 한 분 한 분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4년동안 서로 끝까지 아껴주고, 이끌어 주며, 아프지 않고, 무사히 졸업하기를 기도합니다. 두서 없는 말을 경청해 주신 어른스님, 상판스님, 도반스님들 성불하십시오. 행복한 운문사에서 하루하루 큰 신심으로 재발심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상구보리, 하화중생’ 할 수 있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발원합니다.

‘바윗돌 깨뜨려 돌덩이, 돌덩이 깨뜨려 돌멩이, 돌멩이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이라는 노래처럼 세월이 흐르면 저 자신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깨지고 깨우쳐져서 피안의 저 언덕으로 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성게 게송을 보면 부처님의 법비는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보익생 만허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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