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공부는 언제 합니까?_지원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8:20 | 조회 4199


공부는 언제 합니까?

 

어느 날엔가 우연한 일로 인연이 닿아서 찾아간 그곳 절에계시는 스님께서는 절 같은 곳은 한번도 다녀 본적 없는 제게 부처님께 절하는 법도 가르쳐 주시고 가끔씩 절에 오라시며 책한권을 건네 주셨습니다.책을 좋아할 것 같아서 주는 것이니까 가져가서 읽어보고 다시 가져오라 하시며 주신 책이 아함경 이었습니다. 그책을 다 읽고 난 저는 책을 갖다 드리기 위해 다시 그절을 찾아 갔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주신 책 너무 잘 읽어 보았습니다. 늘 무엇인가 풀리지 않은 그 무엇이 있어 답답 했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알게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기요 중도며 공의 도리 라는 것을요. 라고 말씀 드리니 다시 또 책을 주셨습니다. 임제 어록 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설레는 맘으로 또 열심히 읽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 하자면 정확하게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또 답답해지기 시작 했습니다. 아니 이대목에서 왠 몽둥이?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겐 부처님 말씀보다 더 어려운 어록 이문제를 어떻게 해결 하면 될까? 아! 그때부터 공부를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제게 시절 인연이 도래한 것일까요 공부를 해야 겠다는 그마음이 지금 운문사에서 공부하게 되고 오늘 이 자리 이렇게 앉아 차례법문을 하는 지금의 제가 있게 된 인연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당시 얼른 그책을 스님께 갖다 드리면서 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 불법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런 책들은 서점에 가면 있습니까? 궁금한게 있으며 언제든지 스님을 찾아와 여쭈어 보면 되겠습니까? ... 등 등. 그때 스님께서 대안을 주셨습니다. 공부하고 싶으면 출가하면 되지 출가할 생각은 없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런 스님 말씀에 제가요? 사실 제속뜻은 저도 출가할 자격이 됩니까? 라는 뜻이었는데 출가할수 있다는 스님 말씀이 떨어지기 바쁘게 제 그럼 출가 하지요 뭐. 라는 너무나도 쉬운 제 대답에 스님께서는 이런 말은 아무한테나 하는 거 아냐 진심으로 심각하게 생각해봐, 아주 심각하게 라고 하시며 진짜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스님께 저도 정색을 하며 스님 저 심각합니다. 보내만 줘 보세요 가겠습니다. 그렇게 전 용감하게 출가 했습니다.

사실 전 절에 다녀본적도 없었고 더욱이 승가의 생활이 어떤지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 제가 앞뒤 재보지도 않고 출가를 했으니 그다음 절집 생활이 어떠 했을까요 그때 만약 제가 오래 절에 다녀보고 또는 승가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출가는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라고 출가이후 전 절감 했습니다. 절집을 너무 몰라서 그래서 용감했던 제 절집 생활은 머릿속도 마음속 늘 복잡했습니다.

너무나도 바쁘게 돌아가는 절집생활은 익숙해지기 보다는 보다 좋은 스님들의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위한 미래를 설계하며 개선점만 낱낱이 체크하여 사형님께 왜 이렇게 살아야 됩니까 도데체 공부는 언제 합니까? 전 공부할려고 출가 했습니다. 그러는 저에게 누구는 일할려고 출가 했냐는 에 순간 전 천겹 만겹 되는 벽을 보았습니다. 묵언이 저절로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이후로도 마음은 수없이 일어나고 오늘 밟는 이 흙은 내일 해가 뜨면 다시 밟을 일이 없을것만 같은 나날이 계속 되었지만 정작 힘든 것은 진짜로 힘든 것은 그 무엇이 제마음을 잡고 놔 주지를 않으니 마을로 돌아갈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 미묘한 마음은 또 무엇인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절대 돌아갈수 없는 길이 바로 이길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았는데 어느샌가 절집에 살림살이에 시간들이 쌓이면서 숲은 바람이 일지 않으면 고요하듯 저는 스스로 언제 부터인가 느낄새도 없이 보이는 모든 것은 본래의 모습그데로 볼줄알고 들리는 모든 것은 본래의 그대로 들을줄 알면서 서서히 제게서 분별의 습을 떠나보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도란?

시절인연을 제데로 볼줄 아는 것이며 그래서 인연에 걸리지 않고 주어진 인연에 그데로 따라가는 것이며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음자리를 보고 흔들리지 않으면서 보살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이 내속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자라나고 있을 즈음 강원을 오게 되었습니다.

기대도 되었지만 기본체력이 안되는 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평소에 하던만큼만 하면 4년 잘 보낼수 있다고 말씀 하신 은사스님의 말씀은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걱정이 앞서 발걸음은 무거운데 모범 까지 보이라고 하시는 은사스님을 뒤로 하고 운문사에서 새로운 저의 살림살이는 시작 되었고 염려 했던 바와 같이 처음엔 평삼심이 유지가 되지않아 제게는 많이 힘든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반갑지 않은 불청객은 어느새 찾아와 한시도 떠나지 않고 붙어서 속삭입니다. 공부는 언제하니? 공부는 언제하니? 마음은 경계에 끄달리고 망념은 소리없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땐 정말 마음에서 일어나는 세찬 바람을 잠재울수 있는 방법이 없을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그때 저는 새벽예불 때 오고가며 늘 하늘을 한번씩 쳐다 보게 되었습니다.

새벽하늘에선 금방이라도 청량한 바람이 쏟아져 내려 나의 망념을 다 쓸어버릴 것 같은 신선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불을 마치고 돌아올때는 늘 불이문을 통과하는 제 마음을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습니다. 평상심을 찾으려는 제에게 그렇게 불이문은 마음의 항시 손에 잡힐듯한 그무엇인가의 여운을 남겼습니다. 마음은 고요할새가 없고 공부를 해야되는데 하는 생각은 떠나지 않고 공부를 해야 된다는 경계에 부닥치니 마음이 고요할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평범한 일상의 나날이 가면서 전 평범한 일상이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불이문을 지날때에도 제마음은 불이문을 의식 하지 않습니다. 결국 글을 본다는 것도 마음공부를 하기위한 수단에 불과 하다는 것을 생각 하며 마음을 내려 놓았습니다.

선정이란?

망념이 생겨 나지 않는 것이 선이요 앉아서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정이요 경계에 무심하여 팔풍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며 (훼손,이익,손해,명예,비방,칭찬,괴로움,죽음) 본래성품이란 생멸이 없는 마음이며 생멸이 없는마음은 시비가 없는 마음이라 하니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평범한 삶이 바로 공부라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제게 보이는 세상의 색깔은 지난날과는 또 다릅니다. 앞르로 또 달라지겠지요.

전 그런 저 자신을 기대도 하며 그때마다 변화의 행복을 느끼면서 가끔씩 부처님의 오도송을 읽어봅니다.

한량없는 세월의 생사 윤회속에서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찾아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더니 이는 고통이었네

아! 집을 짓는자여! 이제 너를 보았으니 너는이제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리라

이제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조각 났으니

나의 마음은 열반에 이르러 모든욕망 파괴 되어 버렸네 .

 

제가 법문을 할수 있는 이런 자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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