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_능현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8:52 | 조회 5957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대중스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능현입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많이 알고 계시는 백장회해선사의 가르침입니다.

제가 백장회해선사를 알기도 전에 저에게 이런 가르침을 몸으로 가르쳐 주신 분이 계십니다. 저희 반 몇몇 스님에게는 이미 친숙해지신 바로 저의 노스님이십니다.

누구나 그렇듯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행자 시절 저는 우리 절에서는 아주 오랜만에 보는 행자였습니다.

사실 출가 전에는 스님들의 생활이 산에서 공부하시고 진정한 신선들의 세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자생활이 시작됨과 동시에 저의 생각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부터 열가지 모두 수동으로 해야 하는 절집생활이 스마트시대를 살고 있는 저에겐 그저 하루하루가 동화 속 신데렐라의 일상같았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어느날 노스님께서 “능현아” 하고 부르시기에 가서보니 노스님께서 절구통 앞에 앉아계셨습니다.

‘뭐 하시려나?’ 궁금하던 차에 저보고 절구공이를 잡으라 하시더니 절구통에 제 얼굴만한 반죽 한 덩어리를 넣으시고는 “얼른 찧어라” 하시는 겁니다.

생전 절구통은 달나라 토끼들만 찌는 건줄 알았는데 저보고 찌라고 하시니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제가요? 저 한번도 안해봤는데요?” 하니 “그러니까 해봐” 하시는겁니다.

절구공이들고 그냥 막 찧어대니 점점 제 몸이 절구통에 빨려들어가는듯 앞으로 쏠리었고 너무 힘이 들었지만 말도 못하겠고 옆에 계시던 배터랑 사숙님이 바톤을 이어받지 않았더라면,,, 그날 빚어진 쑥개떡은 못만나 봤을것입니다.

이렇게 절구질을 시작으로 다음 과정은 낫질이었습니다.

“이렇게 한웅큼씩 베어라” 하신 노스님의 말씀대로 했는데 저보고 “톱질하냐?” 물론 저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보였나봅니다.

낫질도 나름 해봤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아침공양후 포행길에선 길에 있는 통나무가 아깝다고 모두 하나씩들고 가자시며 눈치껏 작은것을 들고 갈려고보니 어른스님들 모두가 제 허벅지만한 나무를 끌고 가시기에 슬그머니 두꺼운 나무 하나 질질끌고 힘든 포행을 마쳤고 돌아와서는 나무썰기 톱질도 간간히 시간나는 대로 해야했습니다.

그뿐입니까?

사극드라마에서만 보던 가마솥밥을 하는데 (물론 불때는것은 저를 믿지못하시는 노스님께서 직접때시지만요) 무밥,콩나물밥은 그냥 기본이구요 씨레기밥,김치밥,질경이밥,치자밥등등 들어보지도 못한 밥을 하는데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밥도 있구나 했습니다.

호박이 풍년인 해에는 커다란 솥 한가득 호박죽을 끓여 마을 신도님들과 나눠먹기도 했구요..

이렇게 살다보니 운문사에 와서 나름 안다고 아는척 좀 하고 살고 있습니다.

일만 하느냐구요?

아닙니다. 공부에 대해서도 얼마나 열정이 넘치시는지요. 매일 초발심강 받으시면서도 한 글자라도 틀리는 날에는 정신 똑바로 들지 않고 사니 잘못새기는 거라 하시면서 공부도 일도 모두 최선을 다 하라 일러주십니다.

그런 노스님께서 일을 하실 때는 항상 저희들과 같이하시면서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밥 먹으면서 그 정도도 안하면 복감한다. 행자때 새중때 평생 중노릇하는 복을 지어야 하는 것이고 일을 하지 않고 밥을 먹으면 소보다도 못한 사람이다" 하시며 게으름에 대해서는 호된 꾸지람을 하십니다.

때로는 엄하고 무섭게 때로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곁에서 그 어느 선사들의 가르침못지 않은 가르침을 주시는 노스님이 계시기에 이 자리에서 이렇게 대중스님들 앞에 섰습니다.

이렇게 울긋불긋 단풍들며 알알이 열매들이 실해지는 가을이면 우리절엔 산에 열린 비자줍기가 한창입니다.

오늘도 노스님의 가르침은 비자열매와 함께 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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