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아상_선명스님

가람지기 | 2011.10.26 19:00 | 조회 3556


아 상

 

때는 저녁예불시간,

조그마한 아이가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선의 끝은 바로 TV안의 노랑머리 만화 주인공이었습니다.

부처님과 같은 금발임에도 찰랑거리는 머릿결은 너무도 매력적이었고 거기에다 움직이고 말도 하니, 충만한 신심으로 가득 찬 나만의 살아있는 부처님이 따로 없었습니다. 언제나 이 부처님을 뵈올때면,

내가 주인공인지 주인공이 나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일심동체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그 일념의 경지가 얼마나 깊었던지 멀리서 그림자만 보여도 도망쳤던 호랑이노스님이 다가오시는데도 총에 맞은 주인공의 아픔을 절절히 통감하며 흐느껴 우느라 여념이 없었으니, 이것이야말로 생사의 길에서 자신의 안위를 잊은 진정한 무아의 경험이라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어려서부터 미디어를 통해,깊은 신심으로 무아를 경험한 대교반 선명입니다.

TV주인공을 통해 처음 겪은 무아의 경험.

노스님의 예불가라는 말씀에 법당을 향하면서도‘왜 예불은 꼭 만화하는 시간에만 골라하는지’에 대해 원망하며 무아의 여운에 오랫동안 잠겨있었습니다.

이렇게 부처님보다 만화주인공을 좋아했던 제가 지금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민둥 머리와 회색 옷, 매일 같이 들었던 염불과 목탁소리.불법과의 인연이 깊었기에 저는 스님의 길을 주저없이 택할 수 있었습니다.

출가를 당연시 여겼던 만큼 불교에 대해서도 부처님의 대한 신심도 본래부터 잘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었습니다.

그렇게 행자생활이 시작되고 강원을 오게 됐습니다. 그러나 모습은 출가자이지만 한번도 집을 떠나본 적 없었던지라 조금은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염려와는 달리 힘들었던 운력은 도반들과 함께하니 즐겁기만 했고,

집에서는 못 일어날까 설치던 잠도 100명이 동시에 이불 꾸리는 알람덕에 숙면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저에겐 새로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신세계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즐거웠던 만큼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요? 감시하는 듯 한 수많은 시선들과 작은 일에도 뻥뛰기가 되는 들, 점점 눈에 거슬리는 도반스님들의 행동, 가중되는 소임에 끌려 다니며 서로 다른 생각과 관점들이 뒤엉켜 컸던 기대만큼이나 다가운 실망감은 배가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실망시켰던 건, 강원이 보여준 모습보다 그 강원 속에서 나타난 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기대가 깨지고 실망감을 느꼈던 흐름 속에 나 자신이 동조하고, 어느 샌가 그 상황에 젖어들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걸음 잘못 내딪기만 해도 이 몸 지대방조실 될까 몸사리고,

대중의 입도마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기에 먼저 나서지 않았으며,

음식이 맛있고 없고에서부터 정랑 빨리가고 늦게가는 것까지

하루종일 따지고 재느라 머리 속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 나의 눈코입 6근들은 나에게 이익되는 쪽으로 자동으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강원 오기 전까지 제자신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스님으로써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고 자부했었기에, 대중 속에서 부딪치는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아상으로 채워져 있는 자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상 때문에 대중스님들의 시선이 불편했으며, 사람들의 말에 쉽게 휘둘렸고,

도반스님들의 행동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 댔으며, 소임에 끌려다녔던 것 입니다.

내딪는 걸음걸음, 내쉬는 호흡 하나하나, 땀구멍에서부터 뼈마디마다의 골수까지

오로지 내 존재를 증명하기위한 착으로 똘똘 뭉친 아상덩어리였던 것입니다.

무서웠습니다. 아상이 고통의 원인이라는 단순한 부처님의 말씀이 현실에서 몸으로 직접 느낀 아상은 공포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피의 방법으로,

하루종일 거지떼처럼 먹고, 틈만 나면 지대방에 눕고, 종일 웃고 수다를 떨어보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두려움만 가중시킬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처님께 매달려보기로 했습니다.

절도 해보고, 참선도 하고, 주력도 하고, 간경도하고... 이 덕분 이었을까요?

아이면 수업시간동안 졸면서도 짬짬이 귀동냥한 덕분이었을까요?

문득 알았습니다.

근본의 나는 아상덩어리이지만 이 아상덩어리가 본래 부처 그 자체임을....

다겁생동안 쌓았을 이습을 이제서야 인정하려하니 아직도 두렵지만 도망만 치다가는 만화주인공을 믿었던 어릴적 어리석은 신심으로 평생을 살아갈 것이 더욱 두렵기에

지금은 제 자신에게 당당히 맞서며 살고 있습니다.

온실 속 화초였던 제가 운문사에서의 삶은 온전히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시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생 장판 때만 더럽히며 올깍기 중으로 늙어갔겠지요.

그렇기에 제게 이곳은 다시금 바른 신심으로 재발심하게 해준 출가지이며. 진정한 무아의 길을 가도록 화두를 던져준 선지식이며. 이젠 또 다른 온실이 되었습니다.

그런 운문사에 머물 날이 멀지 않은 지금 이곳에서 배운 소중한 경험들을 되뇌이며 바른 신심 속에서 진정한 무아를 향해 끊임없이 재출가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대중스님여러분!

대중의 큰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온갖 사상과 관습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번잡한 강원의 진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이

이곳 운문사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당당히

정진여일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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