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목소의 물_덕연스님

가람지기 | 2011.12.26 13:37 | 조회 3522


이목소의 물

사집반 덕연스님     

많이 추우시죠? 사집반 덕연입니다.
삶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곤 합니다. 내성적이던 저에게 이목소의 물은 나의 삶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흔히들 업이다, 인연이다라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이유를 찾으려고 합니다.

강원 오기 전에 형님의 몇 가지 당부가 있었습니다. 강원생활에 대해서는 별 말씀도 해주시지 않고 다만 ‘잘못했습니다.’, ‘네.’, ‘아니오.’ 그리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강원에서 생활하는데 별탈없이 지낼 수 있을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푼 꿈을 안고 묵묵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열심히 살다 졸업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하지만 입방한 첫날. 가위 바위 보에서 져서 회계란 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대중 울렁증이 있는 저로써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운문사의 회계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회계가 아니라는 것을 살아본 분들은 아마 다들 아실겁니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치문반 회계스님”, “회계스님” 첫 철이라 서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벌떼처럼 달려드는 반 스님들. 정신은 나를 외면한 채 떠나가고 어리버리한 상태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바쁘고 힘겨웠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연발하며 제정신 차릴 여유도 없이 하루를 마감하고 이부자리에 듭니다.

지나간 과거를 생각하고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탓하고 오지도 않은 내일 일을 걱정하며 한숨 반, 눈물 반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보지만 눈은 어느새 스르르 감겨졌습니다. 아득히 들려오는 새벽 목탁소리에 눈을 뜨며 어제와 같은 날이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옛 어른들의 말씀에 쉼 없이 돌아가는 디딜방아에도 손 넣을 틈은 있다고 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설거지 하러가기 위해 장화를 신으러 김치광으로 향하던 중 이목소의 물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눈에 띄지도 않던 물결이 시원스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어제의 물도 아니고 또 내일의물도 아닌 지금 현재 순간순간 죽사리 죽사리하며 머무름 없이 유유히 흘러갈 뿐이였습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나에게 닥치는 고통의 순간순간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목숨 값이다.” 라고요. 나를 구속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임을, 나만이 나를 구속할 수 있고 또 나만이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면 결국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발걸음 가볍게 일상생활로 돌아왔습니다. 한 생각 바꾸니 이리도 편안한 것을 왜 그리도 저는 힘들어 했을까요? 절대로 지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치문 첫 철도 반 스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아낌없는 도움으로 지나가더군요.

치문을 보내고 또 티 나지 않게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저는 어찌하다보니 사집 마지막 철을 청풍료의 큰부전으로 살고 있습니다. 대중 울렁증은 이제 조금 극복한 상태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싶은데 오랜 숙업 때문인지 머리로는 다 이해하고 다 될 것 같은데 실상 실천하는 데는 어렵기 그지없습니다. 역시 운문사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갖가지 경계로써 몸으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곳임을 절감하게 합니다.

순리대로 물 흐르듯 살자. 긍정의 힘을 믿자...
갖가지로 다짐하고 다시 마음에 중무장을 해봅니다. 이왕지사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해 보자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청풍료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서로의 연이 다하면 오라고 해도, 가지 말라고 해도 저 이목소의 물처럼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강물이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듯 우리의 인연도 잠시 머물렀다 스쳐 갈뿐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경봉큰스님의 좋은 말씀으로 저의 차례법문을 마치고자 합니다.

물처럼 살거래이.
만물을 살리는 게 물인기라.
제 갈길을 쉬지 않고 가는 게 물인기라.
어려운 굽이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 게 물인기라.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어 고기를 키우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는 게 바로
물이니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 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하는기라.
물처럼 살거래이.
물처럼 사노라면 후회없을기라.

경봉큰스님 법어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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