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주인공 - 대교과 보경

가람지기 | 2018.07.09 18:51 | 조회 1475
 안녕하십니까? ‘주인공’이라는 주제로 차례법문을 하게 된 대교반 보경입니다.
주제를 이렇게 정해 놓고 나니 저의 일상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요...
 제가 출가 후 강원에 들어와 매일매일 희로애락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어느 날 문득 ‘뭔가 너무 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무서운 속도로 마음 또한 답답하고 하루 종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자 도저히 마음이 추슬러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없이 많이 던졌고 그럴 때 마다 ‘왜 내가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하지?, 왜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하지?, 왜 내가 누군가로 인해 마음 아파야하지?’등등 제 시선이 온통 타인에게 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따라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는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때까지 ‘하심’이라는 단어가 무조건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만 들었던 저는 스스로
많이 괴롭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하고,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자하고, 무언가를 소유하고자하는 등의 마음들을 모두 내려놓는 것 또한 ‘하심’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겨우 제 마음을 알아차린 후에야 괴로움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 이후 시간이 지나 가장 최근에는 수계교육으로 잠시 공석이 된 도감스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소임을 사는 동안 광대한 운문사 도량을 최대한 빈틈없이 살피고자 계속 돌아다녔습니다. 
 구석구석에 버려진 쓰레기들과 습관처럼 말썽부리는 각 처의 보일러, 전기, 수도, 하수구들이나 온도와 습도, 외부 충격에 변형되어 벌어진 나무창의 틈들 등등 내 집이라 생각하면 도저히 그냥 지날 수 없는 도량의 사소한 일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가는 길에 관심한번, 문을 여닫는 손길 한번이 부드러우면 도량이 조금 더 정미로울텐데 왜 소임자가 되어 도량을 살필 때만 주인같은 마음이 드는 건지.. 진작에 내가 있는 모든 곳이 곧 내 집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업시간에 들었던 주옥같은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법정스님의 그리운 도반 중 말 보다는 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가르침과 감동을 준 수연스님은 어느 날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위암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 풀어진 창틀의 나사를 죄이셨다는 일화입니다. 이 일화 속 주인공 수연스님이 바로 ‘나’라는 것이 없는 ‘하심’이자 머무는 모든 곳이 나의 집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의 行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1년 전에 제가 별좌 소임을 살 때 3개월이라는 그 시간 모두가 참 행복했습니다.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던 제가 아픈 것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행복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스님들의 공양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내가 주인이다’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입장이 되고 보니 갓 입학해서 이 도량 자체가 낯설기만 한 치문반 스님들의 서툰 손길들이 고맙게 느껴졌고, 구석구석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 되는 부분에서는 당연히 제가 직접 정리하면 되었고, 된장∙간장∙고추장들도 푸러갈 때 한 번씩 소임자 스님과 같이 가서 남아있는 양이나 상태도 보고 단도리하는 것을 직접 보여주면서 다음 파트에도 이렇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살다보니 정말 제가 주인이 된 듯 모든 것이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정말 ‘주인’의 입장이 되면 타인에게 바랄 수 없게 되고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제 스스로가 더 많이 움직여 배우고, 가꾸려고 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운문사는 공기가 맑고 도량이 넓으며 여러 강원들 사이에서도 가장 학인의 수가 많은 만큼 취미와 성격이 다양한 도반들도 있고, 작은 걱정하나 할 것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좋은 환경과 조건을 모두 갖춘 이 도량이 먼 훗날 제가 노스님이 되어 우연히 이곳에 들어와 보았을 때에도 여전히 초발심자들을 대장부로, 기백이 있는 비구니스님으로 키워내는 교육의 도량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이 도량의 주인공다운 학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이 나의 것이라 선 긋고 좁은 곳에 갇히지 말고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내 마음 내려놓고 온 시방삼세가 내 집이며, 내 인연이라 생각하며 사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번뇌가 줄어들고 점차 소멸되어 거처하는 곳마다 말없는 주인의 입장이 되서 주위 사람들을 감동케하는 그런 수행자가 바로 제 자신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래보며 차례법문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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