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뒤늦은 출가 - 사미니과 서안

가람지기 | 2018.07.09 18:54 | 조회 1783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산문의 빗장을 열어주신 은사스님께 고맙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모든 생명의 온전한 평온을 발원합니다.

 

이제 한 살이 된 치문인 저에게 법문이란 너무 무겁고 버거운 주제입니다.

법문 이라기 보다 콩나물 시루에 콩나물처럼 운문사 강원에 들어와 조금이나마 자란 저의일상을 되집어 보려고 합니다.

전 그저 정년퇴임 후의 삶을 계획하다 먼저 출가한 도반의 권유로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20대 후반에 불교청년회 활동을 했던터라 별 망설임 없이 선듯 좋은 생각이다, 하고 결정했습니다. 그저 결정만 하고 삭발만 하면 스님이 될 줄 알았습니다.

미용실 가기를 싫어했던 터라 헤어스타일도 편하고, 세수를 좀 넓게 하면 머리감기까지 해결이 되고, 이옷 저옷 패션 유행에 맞춰 깔 맞춤해 입지 않아도 되고, 끝없는 다이어트와의 전쟁에서도 벗어날 수도 있고, 넉넉한 승복 패션의 실루엣도 맘에 들고 차 한잔의 여유로 법거량을 하시는 스님의 모습도 있어보이고, 천천히 포행하시는 스님의 모습, 해재 후 유행을 다니시는 스님모습도 자유스럽고 멋져보이고 저의 노후를 출가자로 선택하기에 부족함이 없이 딱 맘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출가를 했는데, 다음 날 부터 산산이 조각나는 나의 꿈들 이였습니다.

3:30분 저의 기상 시간 이였습니다.

불금이면 취침 시간 이였는데 말입니다.

토요일 일요일의 파란색 빨간색은 달력에 있는 컬러 일뿐 이였고 휴일이면 사찰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일이 많고 더 분주할 뿐 저의 휴식 휴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날이였습니다. 고무신에 행전은 저를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게 했습니다.

경전의 한문, 고어체들은 저를 어느 시대 쯤 까지인지 모르게 거슬러 올라가게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허리에 복주머니도 달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는 어디? 어느시대? 내 나이는?

아침 발우시간 직전 옷 매무새를 만져 주시는 상반 스님 앞에서 저의 물음표입니다. 지금 저의 사대는 비록 상상위배常相違背(서로 어긋나고 등지고) 하야 힘들지만 저는 지금 제 삶에 시간 속에서 가장 평온하고, 가볍고, 한가롭고,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경쟁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움직여야 했고 더 빨리 뛰어야 했고 어쩌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일 앞에서도 누가 그걸 몰라 그러면 바보가 되고 무시당하고 밀리니까 그러는 거지하는 말들로 합리화해야 했던 시간들로 점철되던 삶이였습니다.

그러나 출가 후의 생활은 달랐습니다 . 나와 남을 구분 짓는 마음부터가 번뇌의 시작임을 알게 하고 나를 내세울 때면 무엇이 나인가하는 질문에 떨어질 뿐이고,

잠시 라도 과거로 미래로 오가며 정신을 놓치면 치문반 스님불호령으로 나를

챙기게 하며 단전에 차수한 손은 항상 내 호흡을 챙기게 하며 고무신은 저절로 발바닥의 감각을 알아차리게 하며 총총 걸음은 발목 무릎 허리까지 저절로 수행을 하게 합니다. 봄철에 있었던 관물장 검사는 저의 물건들의 필요성을 한번더 생각하게 했고 단순한 살림살이가 주는 여유로움도 깨우칠수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이 수행 도량인거 맞습니다.

도반 스님과 잠깐 논설 시비라도 벌일 참 이면 마음 살림살이의 빈곤함을 알아차리며 옳고 그름을 내려놓고 화합이 먼저라고 마음 챙겨 봅니다. 언제 이렇게 나를 챙기고 살폈던가 어느 시간 이렇게 나를 들여 다 보고 나에게 집중한 삶의 시간이 있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한 것이 가장 견고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제 자신의 살림살이를 넓혀 가는데 만족하고 행복 하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단월시주의 빛만 늘어 가고 쌓이는 것이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산대원선사의 말씀을 잠시 옮겨오자면 부출가자는 발족초방하여 심형이속하고 소륭성종하여 진섭마군하며 용보사은하고 발제삼유니라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저도 이제 늦으나마 인연이 닿아 발심하여 출가 하였으니 몸과 마을을 달리하여 부처님법을 이어 번뇌와 망상의 마구니를 항복받아 모든생명의 자비로움과 모든 인연에 감사하며 보답하고 삼계고해를 벗어나기를 더불어 함께 제도 할수있기를 발원을 세워 더디 가더라도 멈추지는 않는 부처님 제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회주스님과 교수사 스님들께서 항상 무탈 무애하시어 평온하시길 그리하여 온 도량에 법 향기 가득하고, 이 도량 모든 학인 스님들께서도 평온하시어 그 법 향기 안에서 덕과 지혜 높이 쌓여 큰 스님 되시길 발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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