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삼학의 중요성 - 원정스님

가람지기 | 2006.10.30 16:37 | 조회 2721

원정아! 강원에 가면 열심히 경전 배우고 화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 길을 끝까지 잘 가려면 계율을 스승 삼아서 계혜 이 삼학을 의지해서 살아 갈 것이지 절대로 사람한테 의지해서는 안 된다. 늘 이 몸을 움직이는 이 주인공이 무엇인고 하고 궁구해야 한다

이 말씀은 제가 가장 존경하고 수행의 본보기로 삼아 나도 저와 같이 수행하리라 하고 다짐하는 저희 은사스님께서 저에게 늘 당부하시는 말씀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원정입니다.

저는 이번 차례법문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내가 은사스님 말씀대로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가. 진정으로 대중과 화합하고 있는가. 강원 생활 속에서 삼학을 닦아가고 있는가. 정말 사람에게 의지하는 마음없이 올곧게 내 길을 가고 있는가. 대중스님들은 그러하십니까? 저는 오늘 모두들 너무나 잘 알고는 있지만, 그래서 그런지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아함경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콜리성 북쪽의 한 나무 아래에 머무르시며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청정한 계율을 지니고 선정을 닦으며 지혜를 구하라. 청정한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따르지 아니하고 선정을 닦은 사람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되며 지혜를 구하는 이는 애욕에 얽매이지 않으므로 하는일에 걸림이 없다. 계혜가 있으면 덕이 크고, 명예가 널리 퍼지리라. 마땅히 실행할 것을 행하면 죽은 뒤에 다시 윤회하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래는 청정함을 가장 즐거워한다.”

부처님께서는 아난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제자들에게 이 세 가지 요긴함을 늘 말씀하셨으며, 많은 선지식들 또한 이 삼학의 중요성을 곳곳에서 드러내셨습니다. 대중생활 속에서는 불비시식을 제외한 나머지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계육은 자율과 타율에 의해 어느 정도는 지켜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요? 잘 지켜지십니까?


능엄경 6권에는 네 가지 근본 계율에 대해 나옵니다.

말세의 중생들이 마음을 바로 잡아 삼마지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방법으로 도량을 세워야 모든 마구니의 일을 멀리하고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겠습니까? 하고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딱 네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음행하지 말라

둘째, 살생하지 말라

셋째, 훔치지 말라

넷째, 거짓말 하지 말라

이 네 가지 계율을 지니어 깨끗하기가 얼음과 같고, 서릿발과 같이하면 일체의 지엽적인 번뇌가 생기지 않아 마음으로 짓는 살생, 투도, 음행과 입으로 짓는 망어, 기어, 양설, 악구는 반드시 생길 인이 없어지리라


이 네 가지 계율이 근본이 되고 나머지는 지말이기 때문에 네 가지 계율이 깨끗하면 지말이 생기지 않으며 바로 정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게 살, , , 망의 근본 계율을 어기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혹은 살아있는 다른 생명들을 마구 죽이는 일도, 막행막식을 하는 일도, 음심을 일으켜 행으로 옮기거나 하는 등등의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안과 밖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며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모든 미세한 경계들에 대해서도 그러하십니까?

우리가 강원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울타리 속에서 대중과 섞여 바쁘게 흘러가고 있지만 근본 계율에 비추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테두리들을 생각해 봅니다.

첫째, 불음행 - 나는 도반과의 관계를 신중히 하고 있는가.

둘째, 불살생 - 나는 몸과 마음으로, 혹은 내가 무심코 내뱉는 농담섞인 말로써조차 상대를 해치지는 않는가.

셋째, 불투도 - 나는 너무나 자연스레 일어나서 나 스스로조차도 알아채지 못하는 내 마음 속의 추악한 탐욕들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는가.

넷째, 불망어 - 나는 언제나 언행이 바르고, 남의 말을 헛되이 옮기지 않으며, 계산없이 진실되게 사는가.

계율은 번뇌라는 이름의 도둑을 잡는 것이고, 선정은 도둑을 묶어 놓는 것이며, 지혜는 도둑을 죽여 버리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근본 계율을 생각으로도 범함이 없다면 청정하고 고요해져서 선정에 들 것이고, 선정에 들면 바른 견해가 정립되어 지혜의 달이 뜨겠지요.

바쁜 가을이라 대중스님들 너무 힘드시겠지만, 항상 삼학에 의지해서 밖으로 밖으로만 치닫는 이 마음을 안으로 잘 거두어서 정진여일 하시길 발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법구경의 한 구절로 마치겠습니다.


계율을 빈틈없이 갖춰 이루고, 행실이 방일하지 않는 곳에서 바르게 알고 해탈한 사람에게 악마는 그 틈을 타지 못한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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