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진실한 말의 향기 - 혜윤 스님

가람지기 | 2007.01.20 12:15 | 조회 3446

오랜 세월을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채, 무감각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죄수에게 어느 날 꿈속에서 신으로부터 완전한 유죄를 선고 받습니다. 그가 따져 묻기를

“제가 무죄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고 계실 줄 믿었습니다. 죄없이 이렇게 갇혀 사는 것도 억울한 일인데, 도대체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그러자 신이 대답합니다. “세월을 헛되이 보낸 죄...!”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혜윤입니다.

저는 이곳 운문사에서 몸이 불편하거나 마음이 힘겨울 때, 혹은 기 scjf 소임을 살아야 할 때... 가끔 시간이 더디 간다고 투덜댈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두 해를 정신없이 넘기고, 순식간에 또 다른 새해를 이렇듯 맞고 보니, 무감각하고 할 일 없이 살아온 지난 시간의 허망함과 덧없음... 그리고 자취를 찾을 수 조차 없는 이 세월의 무상함이... 수행자의 길을 선택한 저에겐 하늘의 심판만큼이나 무서운 호통이 되어 저를 일깨우곤 합니다.


대중스님!

스님들께서는 하루 일상 중 어떤 일로 가장 많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낸다고 생각하십니까? 먹는 일?... 자는 일?... 망상?... 아님 운력...?

저는 제 일상에서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수다스럽고 잡다한 말은 아닐지라도 그렇다고 딱히 요긴한 말을 한다고도 할 수는 없는... 그저 습관적이고 무심결에 이런 저런 말을 하곤 합니다. 그래서 공부하시는 분들은 身.口.意 ‘三業’중 하나인 이 입의 허물을 차라리 침묵으로 다스리셨고, 또 반대로 부처님께서는 49년을 설하셨지만 한결같이 ‘法’이 되는 말씀만을 하셨으며, 나중엔 이 ‘한 번(一法)’조차도 설 하신 적이 없다 하셨습니다. 말은 내 마음의 표현이며, 나의 영혼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거짓 없는 소리인 것입니다.


말이 예전보다 많이 간소화되고 축약된 단어를 쓰는 요즘의 신세대들...

저는 이 새로운 언어문화에 편리함과 간소함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기께 소음과 같이 산란하고 때로는 예의 없는 무례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마도 남을 배려하고 남의 말에 더 귀 기울이셨던 옛 어른들과는 달리, 여유 없이 오로지 내 소리 내기에만 급급한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이기의 문명이 초래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사실 저 역시 저도 모르게 냉랭한 제 위주의 말들로만 일관할 때가 많습니다. 문수보살 게송에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미묘한 향이라’하셨습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에 상대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며, 혹은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는 훌륭한 삶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수행자이기에 더욱 실감하며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제 인생의 전환점에서 힘겨웠던 순간을, 따뜻한 몇 마디 말씀으로 소중한 힘이 되어 이끌어 주셨던 두 분의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합니다.


오래전 제가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많이 혼란스러워 하던 때, 친구들과 재미삼아 보았던 어느 점쟁이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공원에서 용돈이나 벌어볼 생각으로 앉아 계신 듯 하였는데, 주위 다른 분들과는 달리 많이 초췌하고 불쌍해 보이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당연히 장사가 잘 될리는 없었고, 그런 모습을 호기심 반, 동정심 반으로 친구들은 그 분한테 점을 보자는 제의를 합니다. 몇몇이 먼저 갔다오더니, 의외로 들뜬 얼굴로 보기와는 달리 아주 신통하다고들 하며 멀찌기서 구경 하려던 저를 데리고 갑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할아버지는, 저에게 생년월일이나 이름.. 하다못해 나이조차 묻지를 않으시고 그저 민망하리만치 저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십니다.

한참 후 불쑥 하시는 말씀...

“학생은 내가 보니까 곧 먼길 나갈 사람 같네... 맞지? 근데 아무리 봐도 자네한테는 더 이상 사주가 보이질 않구만.. 허! 거참...”하며 난처하신 듯 아예 눈을 감으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저 좋은 마음으로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자네하고 싶은 것 하면서 열심히 사시게. 지금 사는 이게 다 사주가 아니고 뭐겠나... 좋은 사주 만들어 가면서 잘 살아봐...”실제로 2~3일 후면 다른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던 저는 반신반의하며, 한편으로 그동안 가슴 졸이며 심란해했던 불안감들을 일시에 날려 버릴 수 있었습니다.

훗날 들은 얘기에 의하면, 당시 친구들이 초조해하는 저를 보고, 그 할아버지께 좋은 말만 해주실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인연을 계기로 친구들은 후로도 가끔씩 찾아가서 덕담(?)을 듣고 오곤 한다는데요. 나중에 제 출가소식을 친구들로부터 전해 들으시고, “그래서 그 학생 사주가 잘 안보였었나..”하시며 당신 tkfad 가장 뜻깊은 일이라 좋아 하셨다 합니다. 그리고 그날 당신이 어렵사리 모으셨을 하루 복채를 몽땅 다 보시해 오셨습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건 그분의 진심어린 배려의 말과, 제 친구들의 기특한 마음씀씀이 덕분에 아마도 제가 장애없이 이 길로 잘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 한분... 제 삶에 가장 큰 마음의 후원자이시며, 지금도 여전히 마음의 안식처이신 분... 바로 저의 모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나오려하질 않아서 의사와의 힘겨운 사투 끝에 간신히 끌려나온(?) 문제아였다 합니다. 부친의 피를 말리고, 모친의 생명을 위협하면서 가까스로 세상에 내놓은 두 분의 첫 작품답게, 아낌없는 후원과 넘치는 사랑의 집착(?)을, 한꺼번에 받아야 했었습니다. 철들자 저는 제 뜻을 좇아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으로 고집스레 떠나갔고, 그렇게 홀연히 10여년을 떨어져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전화 한통화로 들으신 제 출가 소식에 부친은 석달을 꼬박 누워 지내셨고, 다행히 독실한 불자 이셨던 저의 모친은 착찹한 심정으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이 길도 네가 꼭 가야 한다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말릴 수 있겠느냐... 다만, 그 쉽지 않은 길을 네가 잘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하시며 되려 부족한 이 아이가 부처님 전에 혹여 ‘누’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하시더군요. 그러시던 분이 제가 ‘계’를 받고 오자, 제일 먼저 달려오셔서 지극한 큰 절로서 깍듯이 예를 갖추시며 많은 말씀 대신에 짧은 글이 적힌 쪽지를 손에 꼭 쥐어 주십니다.

내용인즉, “혜윤스님! 열심히 공부 잘 하시고, 정진 잘 하시고, 성불하십시오. 건강 하시고요... 사랑합니다...”


별 속에 빛나는 달처럼,

모든 사람 속에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의 광명도 그와 같느니라.

모든 보배 중에서 진실한 말의 보배가 가장 훌륭하며,

모든 악행을 떠나려면 진실한 말로 떠나는 것이 제일이다.

모든 등불 가운데 진실한 말의 등불이 제일이요,

모든 나쁜 길로부터 인도하는 것 중에서 진실한 말로서의 인도가 제일이며,

모든 세상의 살림살이 중에서 진실한 말이라는 물건이 제일이요,

병을 고치는 약 가운데 진실한 말의 약이 제일이며,

떨쳐 일어나는 모든 세력 가운데 진실한 말의 힘이 제일이며,

모든 귀의(歸依) 가운데, 진실한 말에의 귀의가 제일이니라.

‘정법념처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수행자가 입을 다스림에 마땅히 묵묵한 침묵으로 지켜야함이 옳은 일이나, 입을 열어야 하는 순간이라면 그 말 한마디에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상처의 응어리가 눈 녹득 녹을 수 있는... 깊은 감동과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휴식과 같은 말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이야말로 바로 진실한 보살의 법문이며, 지극한 보살의 법공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줍짷고 두서없는 오늘 제 말들이, 긴시간 혹여 대중 스님들께 조금이라도 마음 일으키는 구없이 되지는 않을지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결같이 저희를 이끌어 주시는 일체 부처님들의 마음과 인연지은 숱한 소중한 이들의 마음과, 그리고 제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이 말로서 대중스님들께 모두 회향하고자 합니다.

대중스님들...!

사 랑 합 니 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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