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별은 서로의 빛을 반사해 밤하늘을 수놓는다 -유진 스님 -

가람지기 | 2007.01.20 12:44 | 조회 3140

틱낫한 스님의 ‘상생’이라는 책 내용 중의 한 부분입니다.

『공동체의 몸(승가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여럿이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살 때 공동체는 하나의 몸이 되고 소속된 개인은 그 몸을 구성하는 세포가 됩니다. 공동체의 몸을 생각할 때마다 내 마음 속에는 성스러운 숲이 떠오릅니다. 수행 대중 하나 하나는 아름답게 서 있는 나무이고 공동체의 몸은 그들이 이루는 숲입니다. 나무들은 하나 같이 생김새도 크기도 성질도 아르지만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숲을 키워 나갑니다. 그렇게 늘 서로의 곁을 지키며 서있는 나무들은 아름답고 건강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룬 숲에서는 성스러운 힘이 느껴집니다.』

하나 하나의 세포가 이루어져 성스러운 숲이 되는 대중의 힘.

이완재 선생님은 ‘운문사에 다녀가시면 삼림욕을 한 것처럼 마음 또한 청정해진다’ 하시고 운문사를 찾는 이들 또한 스님들과 가까이 할 수 없고 도량 곳곳에 들어올 순 없지만 스님들의 예불 끝에 가사, 장삼 수하고 안행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을 지탱할 힘을 얻어 간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청정함을 얻어가는 모든 이들과 대중 속에서 이 숲의 한 일원인 대중스님들은 서로에게 서로를 질식시키는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서로의 생명을 키워내는 산소를 내보내고 계십니까?


안녕하십니까? 이 성스러운 숲의 한 일원인 대교반 유진입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과 같은 얼굴 같은 공간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이익과 손해 앞에서 是非를 가리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셨는지 강주스님께서 수업시간에 재차 강조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 학인들은 예전과 달라서 대중과 화합하는 소임보다 자기 개인의 소임을 더 잘살아”고 말입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과 자기중심적 사고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 여기며 살ㅇ가는 習에 익숙해져 있는데다 이 習을 완전히 녹이기도 전에 강원에 온 우리들이 많이 안타까우셨나 봅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나만의 생활에 익숙해져 살아온 자신에게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모든 치문반 스님들이 해마다 겪어야 하는 새로운 규칙생활. 운문사에 처음 입방해서 대중이라는 기대와 환희로움 앞에 떨어진 꺾어가는 정랑길, 계속되는 습의, 말하고 싶은 데 네 마디만으로 규정된 처절한 몸부림.

한 스님의 실수에 반 전체로의 책임완수. 연속된 걱정자리, 참기 힘든 상황 속에서 마음에서 일어나는 타오르는 불길을 꺼뜨리지 못하는 저를 오히려 위로해주며 모든 걸 받아들여 주었던 반 스님들. 저 또한 이런 일들이 치문의 시선에서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제 3세계의 일들처럼 느껴졌지만 이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반스님들의 肯心이 있었기에 그 속에 묻혀 지금 제 자신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교 때는 오백전 불기를 3년에 걸쳐 닦아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10명이 많다는 이유로 치문 때 했던 일을 3년 내내 반복하기를 여러번. 가끔은 힘들어 하면서도 일만 시작하면 몸을 아끼지 않고 목숨 바쳐 일한다고 표현할 만큼 열심히 했던 반 스님들에게 서장 속 대혜 스님의 말씀이 死句가 아닌 活句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마음 한 번 바꾸니 운문사 생활도 바뀌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대로 모든 게 되는 건 아니지만 그저 대중생활을 온 몸으로 익히며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열심히 살면 이 생활이 절대 어려운 생활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사집, 사교를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울력이 많다며 스스로 단정지어 지내기를 여러 번,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확인했더니 그다지 많은 시간도 아니었습니다. 수업 후 1시간, 공양 후 1시간 30분, 오후 방선 후 30분.

평생을 수행하시는 노스님들도 밭에서 풀 뽑고 일하며 공부하시는데 이제 갓 출가한 저희들에게 3시간이라는 운력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가 강사스님께서 해주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대중에 살아서 가장 좋은 점은 身․口․意 삼업을 함부로 할 수 없기에 대중에 는 것만으로도 복이 됩니다. 대중이기에 때 되면 발우 피고, 함부로 말하지 않고, 혼자서라면 융통성 있게 사량하고 분별하지만 대중의 의견에 따라야 하고, 함께 예불하고 행동 또한 조심하며 지낼 수 있기에 업을 조금만 짓는 것이 되기 때문에 대중에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저에게 강원생활에서 얻는 가장 큰 복은 65명이라는 도반인 것 같습니다. 급박함 속에서 느긋하고 기교 없고 애살 없는 그야말로 무뚝뚝의 결정체.


하지만 그 안에 한없는 따뜻함이 있는 반.

익숙하지 않는 모습으로 엉뚱하게 만들어내는 저의 갖은 일들을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며 서로를 지켜봐 주던 반 스님들. 이런 믿음직스런 반 스님들 덕분에 운문사 강원생활이 더 윤택했던 것 같습니다. 별은 혼자 힘으로 밤하늘을 밝히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빛을 반사해 밤하늘을 수놓은 거라고 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과 시끄럽게 일어나는 마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고요한 곳을 찾고 있다면, 요처에서 공부하라는 대혜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대중이기에 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을 밑바탕에 가득 담아 흐트러짐 없는 수행자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 자리에 있기 까지 큰 등불이 되어주신 회주스님, 공부할 수 있게 뒤에서 보살펴 주신 주지스님, 재무스님, 교무스님, 천자문도 모르고 출가한 저희를 그 어려운 한문 속에서 눈뜨게 해주시고 가르쳐 주신 강사스님, 중강스님, 경도 중요하지만 수행자의 정신자세와 인간의 도리를 가슴 속 깊이 심어주려고 마음 쓰시던 강주스님, 이런 어른 스님들이 계시기에 저희가 가야할 이 길은 밝은 희망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어른 스님, 그동안 많이 아끼고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쳐도 후회되지 않을 만큼 소중했던 이 곳 운문사가 대중스님 수행의 힘으로 서로에게 생명이 되는 산소를 내뿜어 영원히 청정한 수행도량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대중스님,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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