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의 지장보살님 - 용성스님

가람지기 | 2007.01.20 13:18 | 조회 2849

첫 철 지장전 부전을 살았습니다.

그 원력이 크고 웅대하여 대원본존이라 칭한다는 지장보살님께 매일 조석예불을 올리며 처음으로 그 간절한 원력에 대해 생각해보고, 강원생활 속에서 저의 모습과 지금 내 안에 일어나고 있는 마음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 한생 삭발염의하고 살겠다고 불문에 들어와서 매 순간 얼마나 깨어있고 매사에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그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예전에 나와 지금에 나는 그렇게 달라진 것이 없었고 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여전히 밖을 향해 헐떡이는 의식들과 시도 때도 없이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식탐들, 나와 남을 분별하는 자기 중심적인 마음 등, 하루 24시간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망상들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이 늘 함께 했습니다.

매 순간 드러나는 성글고 모난 모습들이 둥글고 원만한 모습으로 바뀌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또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지장경을 독송하면서 지장보살님의 중생을 향한 간절함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장경 서문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미륵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실 때까지 모든 육도중생들을 구원하고 고통에서 건져 낼 것을 부처님께서 부촉하셨으며, 또한 지옥의 고통에 빠진 모든 중생들을 다 제도 한 다음에야 스스로 성불하겠다고 큰 서원을 세우셨습니다.

모든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하시는 그 간절한 마음, 그 간절함이 나에게는 왜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지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장보살님의 중생을 향한 그 간절함을 생각하면서 문득 지금껏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저희 속가 보살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함께 있었기에 오히려 더 무심했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부처님과 스승과 부모는 동기동창생이다.”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세상 부모님들이 다 그러하실 텐데, 이 자리에서 남달리 드러내어 말씀드린다는 것이 대중스님들께 송구스럽습니다만, 모든 부모님들의 간절함이 지장보살님과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2남 2녀를 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 중 한 오빠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저의 보살님 가슴에 묻혀져 있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사진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정말 수중에 한 푼도 없이 어머니와 자식들만 남겨놓고 돌아가신 분도 맘이 편치 않으셨겠지만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으로서 안 죽을 만큼 고생스러웠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대쪽 같은 성품과 호랑이처럼 불같은 성품이셔서 동네에서는 욕쟁이 할매로 통했습니다. 어릴 때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욕쟁이 할매였습니다.

어머니 말씀이라면 一言之下에 순정해야 했고,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군대식 성품이셔서 불복종이란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떤 일을 한 때마다 귀가 아프도록 하신 말씀이 “봐라 봐라, 니가 조금 어렵고 힘들어도 너로 인해 만인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겠나?”였습니다. 이해는 가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릴 때도 정말 어려웠지만 출가한 지금도 어렵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집안에 힘든 일이 있으면 곧잘 할매를 찾았고 바쁜 가운데서도 어떤 일이든지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해결해나가는 할매를 사람들은 많이 미더워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좀처럼 속내를 들어내지 않으셨지만 정말 힘드실 때마다 “내가 죽고 싶어도 죽을 시간이 없어서 못 죽겠다. 과연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노.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냐 말이다. 관세음보살...” 하시며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커가면서 언젠가 한번 여쭤 본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바쁘게 사시고 돌아가실 때 아쉬워서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일관하십니다. “죽으면 그 뿐이지 뭐” 또 묻습니다. “자식들 어렵게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냈으면 이젠 당신을 위해 사실만 하신데 여전히 어렵게 사실려고 하십니까?” 또 한마디 하십니다. “다 내 죄고 내 재미다.”

사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자립할 때까지 뒷바라지 다하시고, 함께 살자는 자식들을 뒤로 한 채 홀로 고향으로 가셨고, 오늘도 여일하게 동네사람들과 함께 산과 들을 벗삼아 홀로 그렇게 살아가십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지장보살님과 부모님의 공통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끝까지 그저 잘되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그 내리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믿어주시는 그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분도 계시겠지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이 ‘지금 살아 숨쉬고 있는 나,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나, 생각하고 분별하고 있는 나’를 끔찍이도 아끼면서 매 순간 순간 경계와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살고 있지 않은지요?

다겁생래 놓고 싶어도 쉽게 놓아지지 않는 나, 에고를 바라보며 가슴 저미는 아픔으로 당장 어찌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귀한 운문사의 대중생활을 통해 이전의 나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지금의 나를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부처님처럼 어느 누구든지 어떠한 경우에라도 그냥 믿어줄 수 있고, 지켜봐 줄 수 있고, 그저 잘되기만을 간절하게 빌어 줄 수 있다면, 여러 대중스님과 함께 가는 이 길이 그렇게 힘겹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간절하게 간절하게 두 손 모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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