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 - 명지스님

가람지기 | 2007.01.21 12:59 | 조회 3148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명지입니다.

치문 여름철 종두 소임이 끝나갈 무렵 부전스님들에게 선물과 함께 아기자기한 예쁜 카드를 받았습니다. “무더운 여름 종두 사느라 힘들었죠? 여름 한 철 근념하셨습니다.” 대충 이런 내용일거라고 짐작하고 열어본 카드. 그런데 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중생을 제도하는 僧이 되기 위한 5가지 緣중에 토지의 인연이 있습니다. 운문사에 온 인연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큰 스님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이 당신을 더욱 성숙시켜줄 것을 믿으세요.”

‘종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용이네’라고 언뜻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다락에 올라가 파일에 대충 끼워 넣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치문 가을방학. 집에 돌아와 프린트를 찾으려 파일을 이리저리 뒤적이는데 카드 한 장이 ‘뚝’떨어졌습니다. 무실결에 열어본 카드. 저는 그 카드를 들고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번개를 맞은 것처럼 강렬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들어 마음 한켠에 꽤 오랫동안 여운을 남겨주었습니다. 이 땅이 나를 더욱 성숙시켜줄 것을 믿으라는 마지막 말. 부드럽지만 확신에 찬 관세음보살님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듯한 그 느낌. 그래서 왠지 정말로 그렇게 믿어야할 것만 같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내 안에 그냥 덮어두었던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억눌렀던 서러움, 상처, 분노 이런 감정들을 치유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3초”

행자 때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기에 거의 매일 듣다시피하는 걱정. 그래도 금새 털어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밝게 지낸다고 붙여진 별명입니다. 어떠한 걱정을 들어도, 화가 나는 그 어떠한 일들도 의식적으로 털어버리려고 애쓴 것도 아니었지만 그 때는 마음이 금새 텅 비워져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질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운문사에 들어오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3초가 되지 않는 제 모습을 느꼈습니다. 무던히도 털어내려고, 잊어버리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모르게 많이 닫혀있고 얼굴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경직되고 굳어져서 얼굴이 좀체로 펴지질 않았습니다.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 없던 출가에 대해 처음으로 느꼈던 회의. 서른 평생 처음 생긴 습진. 짧은 기간이긴 했지만 하루 단 한번뿐이었던 양치. 또 정신을 쏙 빼놓는 걱정자리. 그 때 제 눈에 보였던 운문사는 불합리와 불결함의 귀결지일 뿐, 그 이외에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자기 절보다 운문사가 훨씬 편하고 좋다는 스님들도 많았고 치문 첫 철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스님들도 많았지만 저는 정말 버거웠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은 흘러 첫 철이 지난 치문 때 어느 날. 이부자리 줄을 지리지리하게 오랜 시간 맞추고 나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고 할 때 사자새끼처럼 강학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신신당부하신 은사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간신히 삭힌 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그렇게 서러워하는 것이 다 신심 없이 살아온 결과라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그 때까지 온전히 내 것이락 여겨지는 시간은 단 1초도 없이 헐떡거리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온전히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가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기조차 못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예불 끝에 하는 108배를 하는 시간만이라도 온전한 내 시간으로 만들자고 다짐했습니다. 잠도 많고 늘 피곤해서 성성한 적이 별로 없던 저. 그 때 만큼은 성성하게 깨어있을 수 있었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종두 소임이 끝날 무렵 받은 카드와 108배 대참회. 운문사를 그만 뒤야하지 않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제게 그래도 운문사는 살아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은사스님께서 늘 걱정하셔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저의 문제점들을 지나가는 말로 슬쩍 지적해주어 그때서야 비로소 심각하게 저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해주었던, 친하지 않았던 도반 S스님. 대타를 서 달라고 하면 어떠한 대타라도, 누구라도, 흔쾌히 대타를 서주는 부처님의 11대 제자 ‘대타제일’J스님. 너와 나의 구분이 확실하게 서 있었던 치문 첫 철. 다른 스님의 택배를 자기 택배인 양 들어주어서 한참동안이나 얼굴을 쳐다보게 만들었던 막내측 H스님. 치문 겨울철, 다각 지하에 있던 명지上 스님 빨래와 저의 빨래를 모두 걷어 예쁘게 개서 명지上 스님 빨래가방에 모두 넣은 후 지대방 저의 횟대에 얌전히 걸어 주었던 이름 모를 우리반 도반스님들.


치문 첫 철을 보내고 나서 운문사는 사람을 피폐하게 할 뿐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저의 말에 은사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구멍사이로 물은 다 빠져나가지만 콩나물은 어느새 성장해있듯이 저도 반드시 그럴 거라고.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 거라고. 그 때는 마음에 와 닿지 않았지만 지금은 우리반 도반스님들과 대중스님들이, 그리고 이 운문사가 콩나물 시루에 붓는 물과 같이 저를 성장시켜 줄 것을 굳게 믿습니다.


대중스님, 그 가운데 특히 치문반 스님, 이 운문사가 콩나물 시루에 붓는 물과 같음을 굳게 믿고 끝까지 잘 회향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그리고 운문사에 온 인연으로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스님 되기를 발원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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