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신심이란 무엇인가? - 래하스님

가람지기 | 2007.01.23 11:23 | 조회 3048


일찍 발심한 젊은 출가수행자들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하게 걸어가라.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래하입니다.

신심이란 무엇인가?

뭔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레임으로 강원에 들어온 저는, 신심이 넘쳐야 할 치문시절은 무명의 껍질을 벗지 못한 채, 번뇌는 수미산 만큼이나 쌓여 갔습니다. 그런 답답함이 극에 달할 쯤, 저는 의문이 하나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신심이란 무엇일까? 나는 정말 신심이 있었기나 한 걸까? 몇 푼어치 안되는 알음알이로 그게 전부인양 속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말입니다.

타성에 젖어 그 의문도 잊혀질 쯤 저는 사집이 되었고, 어느 봄날 밭에서 일을 하다 문득 행자교육이 떠올랐습니다. 꽃샘 추위로 인해 감기가 기세를 부려, 행자 교육장은 빠른 속도로 감기 환자가 늘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감기는 더욱 심해지고, 처방해 준 약으로는 나올 기미가 없었습니다.

온몸은 식은 땀으로 기운이 점점 떨어지고, 숨을 쉬기조차 너무나 힘이든 저는, 이 몸으로 행자교육을 끝까지 받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렇게 하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대방에서는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끊이지 않고, 습의사 스님은 우리에게 신심이 없어서 아픈거라며, 감기하나 이겨내지 못하면 어찌 중노릇 하냐는 말씀이 야속했지만, 내가 받아야 하는 인연이라면 기꺼이 받으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출가 수행자의 인연이란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이 생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도 이생에 불법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이 교육은 받고 죽어야지”하고 다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정근시간이 되었습니다. 목이 잠겨 버린 저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부처님!

“저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너무나 간절하게 부처님을 부르고 싶습니다. 이 마음 온전히 부처님께 공양 올립니다.”하고 말입니다. 오로지 그 한마음 뿐 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났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났는데 이상하게도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칠줄 몰랐던 기침도, 꽉 막혀 있던 코와 목이 씻은 듯이 나아 있었던 것입니다.

너무나 신기한 저는 혼자 중얼거리며, 환희심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렇게 다 놓고 나니, 사는 도리가 있었습니다. 정말 간절하면 이루지 못할게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마음이라면 천하라도 다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 깊숙이 QN리 내린 믿음은, 그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 또다시, 작은 파도에는 흔들리며 마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 자신을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초발심의 그 마음이 참으로 그리웠습니다. 늘 그 마음으로만 살 수 있다면, 행자시절이라도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선 자리를 돌아보니 이젠 경계에 흔들리더라도, 다시금 깨어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다 내 마음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지난 번 가을방학에는 어느 절에 몇일 묵게 되었는데, 70여세 쯤 되는 공양주 보살님이 계셨습니다. 저녁 공양시간이 되어 후원에 갔는데,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너무나 자유분방한 살림살이하며, 누렇게 때가 낀 밥통이며, 여기저기 산만한 모습들이 아직 중생심을 벗어나지 못한 제 눈에는, 그저 놀랄 뿐 이였습니다. 양념들은 여기하나 저기하나 흩어져 있고, 밥을 뜨는 순간 고춧가루가 묻어 있고, 김치에는 꼬부랑 머리카락이 감겨져 있었습니다. 그것도 감사히 먹어야 할 공양임은 분명한데, 저는 감사한 마음이 들기 이전에 분별심이 올라왔습니다. 옆에 있는 스님을 쳐다보니, 너무나 여여 하게 먹고 있는 모습이 거룩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튿날 부전스님이 그 보살님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 보살님은 일찍이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 지금껏 무보시로 공양주를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평생 예불 한 번 안 빠지고 말입니다. 순간 얼마나 뜨끔했는지... 한 생각 들이키면 감사한 마음으로 먹을 수도 있었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분별심을 낸 제 어리석음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그 노보살님의 가을 하늘 보다도 높아만 보이는 그 신심이 저를 돌아보게 하였고, 그 맑은 심심이 있었기에 제 어리석음 또한 비출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어떤 큰스님의 법문보다도, 제게는 너무나 살아 있는 법문이었습니다. 그 맑은 신심은 분명히 이 법계를 비추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마치 일천 강을 비추는 달처럼 말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모든 공덕의 어머니다. 모든 선을 이루는 근본이며, 믿음은 흐린 물을 맑게 하는, 마니주와 같은 힘을 가졌다. 또한 정성과 진실한 믿음은 생사의 깊은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말입니다.

역대 조사스님들도 뼈에 사무치는 절절한 신심이 있었기에, 부처님의 한마디에도 확철대오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신심은, 그 금강과도 같은 믿음은 수행의 기초가 아니라 수행의 전부일 것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경계따라 달라지는 나와 너의 모습이, 모두가 부처님의 나툼임을 잊지 않고, 내 마음의 용광로에서 다 녹여낼 수 있다면, 크고 작은 경계들이 참으로 고마운 밝은 수행이 될 것입니다. 수행자는 늘 새 마음, 새 날처럼 매순간 발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선 이 자리에서 부처님과 역대조사스님들의 고구정녕한 말씀을 되새기며, 재발심 할 수 있기를 온 마음 다해 발원합니다.

이따금씩 되뇌이는 서산대사의 말씀으로 이 차례법문을 맺고자 합니다.


출가하는 일이 어디 작은 일이랴. 편안함을 구해서도 아니고,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는 것도 아니며, 명예나 재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다.

생사를 면하려는 것이며, 번뇌를 끊으려는 것이고, 부처님의 혜명을 이으려는 것이며,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건지려는 것이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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