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마(睡魔) - 관혁스님

가람지기 | 2007.04.25 14:08 | 조회 3005

나는 하늘을 날 수도 있다.

그리고 부처가 될 수도 있고 지금보다도 날씬한 사람도 될 수 있고,

아주 위험한 곳에서 세계를 재패하는 왕이 될 수도 있으며,

꿀을 탐닉하는 꿀벌이 될 수도 있다.


안녕하십니? 대교반 관혁입니다.

처음부터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앞의 모든 것은 얼마든지 저에게 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꿈속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치문때부터 저는 항상 말버릇처럼‘차례법문 주제를‘수마(睡魔)’로 하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여러분! 수업시간에 오이 따러 밭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치문 수업 시간. 여지 없이 졸고 있던 제게 중강 스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관혁스님 밭에 가서 오이 따 오세요” 저는 오이 밭으로 가서 기왕 따는 거 많이 따서 반 스님들과 나눠먹자 맘먹고 여러 개를 따 왔습니다. 너무 많이 따서 그런지 중강스님께서는 다시는 오이를 따러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 이후로도 여전히 수마는 제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사집이 되었습니다.


사집 수업시간 갑자기 “관혁스님 뭐가 문젠가? 어젯밤 뭐했나?”라는 호통소리와 함께 반스님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그 후에도 졸기를 여러 번 급기야 삼장원 교실을 빙글빙글 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원문 사경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또 운력이 많았던 사교 때에는 앉으면 3초 안에 잠든다고 “3초” 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입선시간에도 예외는 아닌지라 한번은 옆에 앉는 도반 스님이 안타까운 마음에 깨운 적이 있는데 저는 잠을 깨운 것에 화가 나서 그만 짜증을 낸 일이 있었습니다. 도반 스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그 후 저는 ‘절대 졸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해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어찌된 일인지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졸음을 조금이라도 깨기 위해서 손가락 꺾기와 손등, 허벅지 등을 꼬집어 보기도 하고, 지압기로 찔러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졸고 있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치문에서 화엄으로 오기까지 나름대로 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잠은 사전적 의미로는 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을 쉬는 상태를 말하며, 정상적이고 쉽게 원래 상태로 되돌아 올 수 있으며, 반복적으로 나타낼 수도 있고, 외부자극에 대해 그 반응이 약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잠은 잘수록 많아진다는 말이 있듯, 습관을 잘못 들이면 항상 그 시간만 되면 졸리게 되는데 이런 좋지 못한 습관을 바꿔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졸린 상태임을 알아 차려야 하고 전날 늦게 잤어도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하며 일어나는 시간이 불안정하면 편안한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수마가 수행에 자극이 되어 깨달음에 이르게 한 일도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수마 때문에 부처님께 꾸지람을 듣고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아나율 존자는 밤이 새고 아침이 올 때까지 눈을 감지 않고 수행하다가 실명을 하게 됩니다. 실명은 했지만 그의 철저한 수행은 마침내 지혜의 눈을 얻게 되고 부처님이 인정한 천안 제일이 됩니다.

수마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저도 아나율 존자처럼 눈 뜨고 밤새고 싶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전 이 수마를 제 수행의 화두로 삼아 열심히 공부 하고자 합니다.


대중스님!

춘곤증에 시달리는 봄입니다.

잠의 포로가 되기보다는 잠과 도반이 되어 수행정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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