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절대 고독의 한 가운데 우뚝 선 자(지원스님)

운문사 | 2006.05.29 12:22 | 조회 2962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지원입니다.

인도 고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절대 고독의 한가운데 우뚝 선자 그가 곧 수행자다. 언제나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자, 그 꽃향기로써 넘치는 자 그가 곧 수행자이다.’

한달 전 방학을 마치고 운문사로 오는 길에 경산의 한 저수지에 피어있는 연꽃을 보신 분이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경박하지도 않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 옛날 영산회상에서 왜 하필 부처님이 연꽃이라는 무정물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전하려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비록 그때의 부처님의 미소를 이해할 순 없지만 연꽃을 보면 저역시 입가에 미소가 번지곤 합니다. 연꽃으로 마음과 마음을 연유하되 그 마음이 서로 상통하여 미소와 미소로써 답한 以心傳心, 단순히 아름다움으로만 이 꽃을 이해하고 사랑하기엔 연꽃이 가진 그 덕과 성품이 너무 고결하기에 연꽃의 다섯가지 덕을 지어 대중스님 수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생각되어 조심스레 적어봤습니다.


연꽃의 첫 번째 덕은 항상 새로 피어난다는 것입니다.

다른 꽃들은 7월 9월사이 일시에 피었다 자지만 연꽃은 피고지고를 반복합니다.

수행은 매 순간순간 마다 새로이 자신을 다져가는 과정입니다. 매 순간을 전혀 새롭게 볼 수 있어야 하며 지나간 과거에 만들어진 선입견으로 현재를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일상적인 타성의 늪에 빠져 현재의 안일에 집착한다면 고여있는 웅덩이에 물처럼 썩게 됩니다. 본래의 자아와 만나기 위해서 쇠퇴해져버린 어제의 발심으로부터 이미 자리잡은 나태함으로부터 어제의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 과거의 것을 놓아버리고 치우치지 않은 걸러지지 않은 흐르는 강물처럼 매 순간 새로운 구도심의 날이 되어야 나날이 좋은 날 ‘日日時好日’이 될 수 있습니다.

연꽃의 두 번째 덕은 썩은 물에 나지만 꽃향기가 향기롭고 사방에 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 수행자는 자칫 이기적으로 살기 쉽습니다. 구법의 길에서 절대고독으로 우뚝선다는 것은 구도의 하나의 과정이자 방편이지 전부는 아닙니다. 연꽃이 제대로 피게되면 그 향기는 저절로 번지기 마련입니다. 수행자는 그가 쌓은 원력과 수행의 덕으로 중생을 널리 감쌀 수 있어야 합니다. 꽃향기가 사방을 덮는 것처럼 취할 듯이 강렬한 향은 아니지만 질리지 않고 편안한 연꽃의 향처럼 말입니다. 수행자가 세운 원은 자기로부터 시작하여 중생에게 도달되어야 합니다. 중생들에게 있어 수행자의 덕과 지혜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생기게 하며 그 믿음으로 자신들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그 법다운 향기에 세상을 살아갈 용기와 자신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연꽃의 세 번째 덕은 더러운 곳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바세계를 오탁악세라 합니다. 그 세상은 수행자를 가만히 놓아두려 하지 않습니다. 내・외부적인 경계의 움직임에 따라 마음이 요동을 치기도 하고 행복과 불행, 안락과 고행이라는 극단적인 두갈래의 길에서 희비가 엇갈리며 시비가 들끓고 사대, 오온, 삼독의 정체되어 있는 탁한 것들에 마음이 노출되기란 쉬운 일입니다. 수행자의 목적 미혹과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내 마음을 부처님의 경지까지 정화시켜 공덕화 하는 것에 있습니다. 번뇌에 물들지 않는 청정무구의 불법성으로 온갖 죄업과 악습이라는 흙탕물이 튀어도 묻지 않는 연꽃의 덕을 닮은 수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 연꽃의 덕은 그 잎은 푸르고 줄기는 곧으며, 꽃은 본연의 색으로 청정함을 잃지 않습니다.

수행자도 늘 내면의 본청정심의 울림에 귀를 기울리며 마음가는데로 흔들릴지언정 연꽃줄기의 유연함처럼 본자리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안팎의 경계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애착심을 일으키지 않고 애착됨에 없기에 미움이나 사랑에 마음을 흘려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흔들림 없는 신심과 어떤 경계에도 이끌리지 않는 믿음의 본래 청정심은 어떠한 경험과 비극적인 일도 마음의 평화에 이르기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야 말로 진리의 자체입니다. 자기의 본성을 통찰하는 때가 기적과도 같은 진리의 순간임을 알 때 우리 수행자가 선 자리자리가 청정법계가 될 것입니다.

다섯 번쨰 연꽃의 덕은 무엇하나 남김없이 자신의 것을 줍니다.

연꽃은 어느하나 버릴 것없는 쓰임새가 풍부한 약입니다. 수행자의 회향이 이와 가탕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비심 보시는 가슴에서 나옵니다. 중생의 마음도 가슴으로 받아 드려야합니다. 슬퍼하는 자에게는 한 없는 눈물을 흘려주기도 하며 기뻐하는 이에겐 환한 미소를 지어 줄 수 있어야 하며, 다른 수행자 앞에선 그가 머물 수 있는 큰 산이 되어 주기도 해야 합니다. 진리를 생각하던 머리에서 진리를 향해 움직였던 몸, 진리를 받아드렸던 가슴까지 모두 회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살은 모든 존재의 본성이 공한 것임을 알면서도 행동의 결과를 믿어 의심치 않고 중생이 무아임을 알지만 그들에게 자비심을 내며 진리를 구하는 마음은 열반을 향해 있지만 윤회의 세계에서 살아가며 중생에게 필요한 것을 베풀지만 그 갚음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나툼, 이것은 중생들에 대한 애민심을 가득 부여안고 자신을 회향하는 것,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 수행자의 자비심은 중생들에겐 그들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약이 될 것입니다.


‘나는 수행자입니다’라는 마음으로 매일 새롭게 태어나는 수행자, 그가 닦은 원력과 덕이 꽃향기로 퍼져 다시금 뒤를 돌아보게 하는 수행자, 탁한 것에 물들지 않고 곧아 늘 청정한 수행자. 이 모든 것을 회향할 줄 아는 수행자, 이런 수행을 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부처님의 마음과 같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연꽃을 단지 무정물로 보지 마십시오. 수행자를 일깨우고 감화할 수 있는 덕을 가진 부처님의 꽃입니다.


대중스님, 당당한 수행자의 한 마음에 의지하여 본성의 울림에 귀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가슴한 구석을 비워두십시오. 그곳에 오늘 저의 법문으로 연꽃 한 송이가 심어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중스님, 맑고 향기로운 연꽃같은 수행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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