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태어남과 삶, 그리고 죽음(선봉스님)

운문사 | 2006.05.30 17:01 | 조회 3277

대중스님 여러분!

요즘 속세의 신세대계층과 우리 운문사 학인의 공통점을 아십니까?

바로 도토리 모으기입니다. 밖의 신세대들은 인테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도토리를 모으고, 우리 학인들은 도량에 떨어진 현실세계의 도토리를 열심히 모으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선봉입니다.

치문때 저희반 백시스님의 말처럼 대타도 세울 수 없고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차례법문이 다가오면서 무슨 내용을 해야 할지 내내 고민만 하다가 사집이 지나고 사교가 되고 가을철이 되었습니다. 최후통첩을 받고 다급해진 저는 우연한 기회에 한권의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제가 관심 있었던 스님의 책이기에 제 차례가 아님에도 냉큼 집어 읽게 되었습니다.


정토마을은 불교계 최초의 독립형 호스피스시설로서 인간존중의 정신에 입락하여 죽음에 대한 막연한 절망과 두려움에 시달리는 말기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며 나아가 사회복지 및 의료복지 향상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곳이다.

그 책은 충청도 구녀산 자락에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말기 암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이 세상과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불교계 최초의 독립형 호스피스 마음인 정토마을을 운영하고 계시는 능행스님입니다. 그동안의 많은 이별에 대한 아프고 애절한 사연들이 실려 있었습니다. 재가자에서 스님에 이르기까지 천 여명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들의 마지막을 함께해 주며 수행하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에서 수행자로서 종교인으로서 죽음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대중스님은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아직 낯설기만한 죽음이라는 단어와 그 현실에 대해서 그것에 직면했을 때 중교인으로서 어떠한 자세여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절실한 삶의 외침입니다. 그들이 세상과의 이별을 아름답게 함께 해 줄 수 있는 것이 우리 종교인의 의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출생이 많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축복과 기쁨을 주듯, 한 사람의 죽음은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절망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남기는 법입니다. 그러하기에 넋 놓고 죽기만을 기다리는 경우 본인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벼랑 끝에서 실오라기라도 붙잡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 종교인, 성직자라는 사람들의 의무는 그들이 부여잡고 있는 그 가냘픔 생명의 끈을 함께 잡아주며 세상과 멀어지는 그 순간! 미움을 돌려 사랑으로, 억울함을 감사함으로, 집착을 내생에 대한 믿음으로 만들어 그와 그 가족의 이별의 순간을 평온하게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애쓰기 보다는 죽음이후에 재사 지낼 것인지, 재사비용은 얼마를 줄 것인지에 더 관심이 많은 건 아닌지 궁금합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모든 삶을 함께 하는 것으로서 종교는 종교의식만을 위한 종교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태어남과 삶, 그리고 죽음의 전 인생의 과정을 통하여 한 인간의 삶과 철학과 버팀목이 되어 그의 생활양식 전반에 녹아날 수 있는 것이어야만 참 종교의 영적가치와 존엄성이 된다고 믿습니다. 위의 이유로 정토마을에서 능행스님의 활동은 매우 가치있는 수행입니다.


불교는 자비심으로 힘을 삼는 종교입니다. 죽음의 강을 건너고 있는 암환자에게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속에서 그 마지막 한 숨을 이끌어주고 그들의 고통을 가슴깊이 함께 나누며, 웃으며 편히 갈 수 있도록 두 손 꼭 잡고 나무아미타불을 전력으로 함께 불러주시는 능행스님의 모습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은 세속의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 드리겠습니다.

어느날 평소 호스피스관계로 알고 지내던 수녀님에게 연락이 왔답니다. 스님같은데 통 말이 없어서 어떻게 해 드려야할지 모르겠다구요. 그래서 바로 병원으로 가보니 병실에 말할 수 없도록 깡마르고 머리와 수염은 주체할 수 없도록 길어 있고, 손톱은 너무 길어 살을 파고들듯 하고 있으며, 온몸은 목욕을 하지 못해서 비늘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언듯 스님처럼 보이기에 귀에 대고 스님하고 불렀더니 그제서야 눈을 뜨셨답니다. 법랍 24년, 세납 47년의 토굴하나 없이 평생을 수좌로만 사셨던 스님이셨습니다. 결제중 유난히 기침을 많이해서 해제하고 병원에 왔더니 폐암말기. 그래서 바로 입원을 하셨는데 좀 괜찮은 것 같아 도반들을 결재보내시고 간호해 줄 사람 하나도 없고 속가 동생도 형편이 어려워 올 수 없는 형편이었답닏. 혼자 그렇게 죽어가시면서 평생 수행자로 살다가 큰 십자가 내 걸린 병실에서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교회에서 와서 기도를 해 대도, 천주교에서 와서 대세를 받으라고 해도 침묵으로만 일관하셨답니다. 24년을 수행자로 산 스님의 걸망에 들은 것은 가사와 장삼, 승려증, 그리고 지갑에 8만원, 통장에 120만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능행스님을 만나 다행히 인생을 승려로서 정리하시고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은 “문중에도 공부중인 나의 도반들에게도 알리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꼭 병원을 지어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이 벗게 해 주세요.”하시고는 출가자의 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저의 이야기가, 제 도반,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 출가자에서 더욱더 절실한 것이 호스피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속세의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닌 우리들을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갖고 삽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수행자로서 말입니다.

저희 은사스님의 희망은 노스님들을 위한 양로원과 비구니스님 전용 화장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연세어도 그 준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배우고 계십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을 떄마다 저와는 관심분야가 다르다고 흘렸던 제 자신을 이 자리를 빌어 반성해 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대중스님께서 지낸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그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었습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