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익은 것은 설게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하라(정묵스님)

운문사 | 2006.06.05 13:37 | 조회 3593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정묵입니다

강원오기 전 은사스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당부를 하셨습니다.

“예불이나 발우자리는 절대 빠지지 말고, 하루일과 중 백팔배나 소의경전을 정해서 꾸준히 할 것과 맡은 바 소임 충실히 해내고 나이가 많은 도반스님이든 나이적은 도반스님이든 네가 맞추어 생활하고 경전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장애없이 강원생활 잘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운문사에 들어와 몇 철을 보내고 사집에 이른 지금에서야 은사스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알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제가 강원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치문 때는 익혀야 할 것과 제한되어진 행동들이 많았고 초시간에 맞추어 빨리빨리해야 한다는 것이 일 자체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상・하판의 구별을 지어놓은 규칙들에 불만을 토로하는 소리도 간혹 듣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이해 안되는 것들도 있지만 대중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규칙들, 치문이기에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응시키기 위한 필연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한 것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반스님으로부터 왜 강원 생활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제 자신이 강원생활 자체가 솔직히 말하면 집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좋았기 때문에 도반스님의 물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 저는 사집 여름철을 보내면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왜 강원생활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 저는 서장을 배우면서 “익은 것은 설게 하고 설은 것은 익게 하라”는 대혜스님의 말씀이 그 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 세속적인 습관에 길들여져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습관들은 많고 수행인으로써 정작 익어져서 갖추어야 할 습관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원생활에서 무엇을 익게 해야 할까요.

우선 부처님의 마음을 말로 표현한 경을 배우는 곳인만큼 부처님과 조사스님들께서 설해주신 경구로써 무명에 가리워진 마음을 밝히고, 수행의 길잡이로 삼아서 수행을 익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야 본래 청정한 자성을 깨달아 부처님의 혜명을 이으며 출가의 본뜻인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비추어 보지 않으면 경전을 보아도 이익이 없다”는 청매선사의 게송처럼 경전공부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수행인으로써의 마음가짐과 익숙치 못한 승의 규범, 위의 등을 익혀 익숙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익혀진 발우습의나 승복입는 법이나 예불모시러 가고 오는 동안의 걸음걸이며 말하는 법 등의 수행자로써 익혀야 할 규칙들을 학인인 지금 자연스럽게 익혀야만 되지 않을까요? 나를 경책해 줄 수 있는 상반스님과 도반스님을 마음깊이 선지식으로 삼아 모르고 행했던 일, 알면서도 익지 않아 행하여졌던 행동을 고쳐 수행인으로써 기초를 다져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어느 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보살님들과 함께 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보살님들이 제대로 국수를 먹지 못하고 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조용히 공양하는 습관에 익어 소리없이 먹고 있는 스님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보살님들은 말도하고 소리내며 먹던 습관 때문에 스님의 조용한 모습이 새로웠던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배어지는 습관이 다른 이들에게는 본보기가 됨을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도반스님의 머터러움을 통해 나의 행동을 먼저 고치고 묵묵히 조용히 자기 자신을 지켜보는 것으로 수행의 깊이를 더하며 세속에서 익혔던 무의식중에 나타나는 행동들을 자꾸자꾸 설게 하는 기간이 강원생활이 아닐까합니다

길지 않은 강원생활 정진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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