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있는 곳에 저것이 있다(선효스님)

운문사 | 2006.06.12 11:22 | 조회 3390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선효입니다. ‘운문사’라는 생각만 해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그렇게 원하던 운문사에 와서 생활한지 벌써 세철(봄,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듬) 째 접어들었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이었다면 다행이겠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고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修道를 생각하고 因果를 생각하고 因緣을 생각하고 業을 생각하고 결국에는 이 苦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차례법문을 좋은 기회로 삼아 苦가 일어나고 苦가 멸해가는 과정인 십이연기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苦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코자 합니다. <잡아함경>에 부처님은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든 출현하지 않든 상주하며 여래는 이 법을 자각하고 등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위해서 분별하여 연설하고 개발하여 현시하나니 소위 “이것이 있는 곳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날 때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큰 괴로움 덩어리가 모여 나타나며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행이 멸하고 내지 큰 괴로움 덩어리가 멸한다.」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렇듯 연기법은 세존이 깨달은 진리이며 이 세계가 어떤 실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기의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이연기는 이처럼 연기하는 세계의 모습을 중생들을 위하여 12가지로 체계화한 것입니다.

그 첫째는 無明입니다. 이것은 실재하지 않는 무상한 것을 실체로 착각하고 그 무상한 형체를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 집착해 버리는 어리석음입니다. 즉 진리, 연기, 사성제, 정법에 대한 무지로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믿는 것이며 이것이 苦의 근본 원인입니다.

둘째는 行입니다. 무명의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을 함으로 습관, 성격, 소질 등 바르지 못한 자기가 형성되어 갑니다. 행은 업을 말합니다.

셋째는 識입니다. 이것은 行 즉 業에 의해 형성된 잠재된 힘으로 육근을 통해 받아들인 인식주관으로서의 육식을 말합니다.

넷째는 名色입니다. 명은 정신적인 것 색은 물질적인 것으로 인식작용에 의해 일체의 존재가 현상적으로 나타남을 말합니다.(모양,형태,윤곽 등)

다섯째는 육입(六入)입니다. 인식할 때 인식의 대상이 들어오는 門으로 ‘안이비설신의’ 감각기관 즉 육근(六根)을 말합니다.

여섯째는 觸입니다. 觸은 접촉한다. 충돌한다는 뜻으로 감각기관인 육근과 그 대상인 육경과 각각 지각 주체인 六識이 화합 접촉하는 것으로 인식작용이 생기는 것입니다.

일곱째는 受입니다. 이것은 감수 작용을 말합니다. 이 촉에 의해 즐거움, 괴로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느낌이 일어납니다.

여덟째는 愛입니다. 이것은 심한 욕구 즉‘갈애’를 말합니다. 맹목적인 욕심이죠. 좋아하는 것에는 사랑하는 욕구가 싫어하는 것에는 증오의 감정이 발생합니다.

아홉째는 取입니다. 이것은 愛로 인하여 일어난 욕구가 추구하는 대상을 소유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증애의 감정으로 인해 올바르지 못한 집착으로 살생하고 훔치며 망령된 언어를 사용하는 등 몸과 언어로서 업을 짓게 됩니다.

열 번째는 有입니다. 이것은 取로 인해‘존재’가 나타납니다. 몸과 말로써 짓는 행동위에 나타나며 愛다와 取시로 인하여 여러 번뇌를 일으켜 다시 業을 짓고 생사윤회를 하게 합니다.

열한 번째는 生입니다. 이것은 有로 말미암아 존재 자체가 형성됩니다. 오온이나 명근을 획득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에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며 인식, 경험 따위의 현상이 발생하는 것 역시 生 이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열두 번째는 老死입니다. 生으로 말미암아 늙고 죽음이 있는 것입니다. 즉 생사에서 비롯된 근심, 슬픔, 번뇌, 괴로움이 있게 되며 다시 미래의 生을 받아 고통 속에서 살다가 다시 소멸함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무시이래로 무명에 덥혀 ‘나’라는 존재가 실재한다는 잘못된 집착으로 고통 받으며 그 ‘苦’의 원인도 모른 채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함으로 신구의 삼업을 지었으며 이 업에 의해 형성된 잠재된 힘으로 육근을 통해 받아들인 인식주관으로서의 육식을 바탕으로 이 몸과 정신을 이루고 육근을 통해 그 대상인 “비”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시다. 그를 관찰합니다. 그의 장・단점을 분별해 조건에 맞으면 즉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면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잘 생겼다. 능력 있다. 지식이 풍부하다. 멋있다 등등 그의 예찬론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에게 집착해 그는 나만 봐야하고 나만 생각해야하고 내가 그에게 있어 전부이기를 기대합니다.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기 싫어 괴롭고 둘은 하나 되기를 원하고 서로에게 묶이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에서 ‘우리’가 됩니다. 여기서 또 다른 ‘내’가 태어납니다. 아무리 멋진 ‘비’와 함께 했더라도 즐거움은 잠깐입니다. 이렇듯 無明과 行, 愛와取, 有로 인해 나고 죽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고통의 바다에 윤회합니다.

이와 같이 십이연기는 苦의 발생과정과 소멸과정을 밝힌 것입니다. 苦가 발생하는 과정인 순관은 생멸문으로 無明을 인해 行이 있고 行을 인해 識이 있고 내지 老死가 있는 사성제의 苦諦, 集諦 즉 세속의 길을 보여주며 苦가 소멸하는 과정인 역관은 환류문으로 無明이 멸하므로 行이 멸하고 行이 멸하므로 識이 멸하고 내지 老死가 멸하는 사성제의 滅諦, 道諦 즉 열반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줍니다. 열반으로 가는 길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八正道수행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존재의 고가 발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밝힌 12연기에 대해 깊이 사유하고 체득해 근본 무명을 제거하고 돌고 도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고 원력행사로 세세생생 보살도 행하기를 서원해야 할 것입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고 다 같이 성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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