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무엇인고? -지환스님(화엄반)

운문사 | 2006.07.11 12:43 | 조회 2977


환인 줄 알면 곧 여윌 것이요, 환을 여읜즉 깨달음이니라.

안녕하십니까! 대교반 지혜지 허깨비환 지환입니다.


도량에 빨간 능소화가 피고 이목소는 경쾌하게 흘러가는 이 여름에

드디어 차례법문을 합니다.


이렇게 많은 대중스님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바로 250명의 잣대가 저를 평가하게 될 것이기에... 하지만 이젠 250명의 잣대보다 저 스스로의 잣대가 훨씬 날카롭고 정확해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담담하게 시작할까 합니다.

저는 출가한 이후 심장이 벌렁거리는 증세를 자주 느끼게 되었습니다. 손을 심장에 대면‘쿵광 쿵광 발렁 벌렁’그러면서 마음도 안정이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심 걱정이 되어 한의원에 갔더니 저를 한번 쳐다보시더니 의사선생님 말씀하시기를

“스님 A형이죠. 끼는 많은데 다 못 풀고, 참고 살아서 그렇습니다. 참지 말고 풀고 사세요. 스님”

소위 말하는‘심화병’. 밖에선 현모양처병이라고 저번에 사찰요리강의를 해 주신 선재스님이 정의를 내려주셨죠. 도대체 수행자에게 참지 말고 살라는 말은 무엇일까? 欲이죠. 용심을 제대로 못해서 생긴 병이라고.

하지만 나는 함이 없이 살 수 있는 도인도 아닌데, 그렇다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잠 오면 다 자고 화나면 화내고 감정이 일어나는 대로 끌려가고... 그렇게 솔직하게 사는 것이 현명한 삶일까요?


하지만 출가이후로 쭉 세뇌되어진 것은

“참아라.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빚어진 것이지 1%도 남탓은 없다. 마음을 잘 써야지... 여시굴 피하면 호랑이굴 만난다. 너무 잘 하려고도 하지 말고 너무 못하지도 말고 중간만해라.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다.


중간만 유지하면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진실로 정말 어렵습니다.

밖으로는 끊임없이 경계에 부딪히고 안으로는 헐떡거림이 쉬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중생을 위해 중도적인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말고 공의 원리를 철저하게 파악해서 연기적 존재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라고.

서장에서 대혜스님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옥같은 운문사도 있고 원수같은 도반도 있으며 업장이 두텁다고 느끼는 놈도 있지만, 내가 없다는 것만 알면 지옥도, 천당도, 업도, 남도 다 없는 것이 된다.”

이렇게만 되면 실로 참을 것도 없는, 참는 놈도 없는 그런 경지가 되겠지요.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배워 나도 환이고 세상도 환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제 심장은 여전히 더 쿵쾅거리며 나는 이렇게 분명하게 살아 존재함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도반스님은 아직 핵실을 파악하지 못해서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핵실이라...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러던 중 능엄경을 다시 보다 문득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일체 중생은 반연심으로 자성을 삼고 잘못 수행하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느니라.”

“아난아! 이것은 전진의 허망한 상상으로 진성을 미혹케 한 것이며 적을 오인하여 자식을 삼은 것이다.”

아난이 부처님을 보면서 일으켰던 모든 마음이 모두 허망한 상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파해주자 아난은 괴로워하며 망연자실합니다.


여기에서 저는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아 내가 바로 아난이었구나...’

저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매사를 진심으로 다하여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들이 참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오히려 남들이 틀렸다는 것에 초점이 가 있었지요. 저 또한 은사스님의 올곧은 모습이 보기 좋아 출가했고 바라만 봐도 좋은 그 마음이 진짜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것이 모두 착각이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이 진심이라면 변하지 않아야 하는데 변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 마음이라는 놈은 날마다 변하고 있고 동할 때 마다 괴로움을 수반합니다. 그래도 그 마음이 순간 순간 진실하다고 자부했는데 알고 보니 도둑을 자식으로 삼고서 의기양양하며 어리석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지한 저를 보면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고 저 또한 망연자실하게 됩니다. 아난처럼 하루아침에 존재성이 없어져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슴과 염소를 소라고 착각하여

고집하며 항상 아끼고 보호하더니

홀연히 소가 아님을 알고

망연히 고삐를 놓아버려

홀로 들판 가운데 서서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묵연하구나.


그렇다면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한 물건이 있어

항상 움직이는 것 가운데 있지만

얻을 수 없는

이〜것은 무엇인고?


하지만 이제부터가 공부의 진짜 시작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한 마디 더 하고 싶다면 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나 깨달음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信根을 여의지 않았기 때문이며, 一念이 진실했기 때문이며, 정성의 지극함이 끝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아무 것고 너무나 모르지만 오로지 애쓸뿐입니다.


대중스님들 정진여일하시고 날마다 행복한 수행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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