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어느것이 진짜 나일까? - 무비스님(화엄반)

운문사 | 2006.07.11 12:55 | 조회 2853

휘파람이 절로 나오는 기분 좋은 날이다. 그러다 문득 나를 비롯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생기가 없어지면서 마음이 허탈해진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치만 왠지 모든 것에 의기소침해진다. 업인가보다. 수시로 일어나는 이 번뇌들로부터 나는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무비입니다.


출가 전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이 마음을 보며 그 무엇을 해도 그 뒤에 따라오는 거대한 블랙홀같은 공허함과 무상함에 몸과 마음이 다 휘청거릴 때가 있었습니다. 고민 끝에 세상에 있어보아도 별 볼 일 없겠다 싶어 출가를 결심합니다. 굳게 마음먹고 출가는 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태산입니다. 무상함에 대한 해결점을 찾기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내 존재에 대한 해답은 도반스님이 대신해줄 수 없었고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그 무엇을 해도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엔 앙금이 남았습니다.


치문 어느 날, 전 기도를 해보기로 결심합니다. 많이 하면 하루 200번, 게을렀다 싶으면 하루 100번, 입선시간과 수업시간을 제외한 시간은 오직 다라니만 칩니다. 그런데 정말 우스운건 기도를 하는 동안에도 전 무언가에 화가 나 있고 괴롭다는 것입니다. 왜 괴로울까? 기도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심과 또 기도를 하고 있는 나에게 대단한 무엇인가 있을 거라는 강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체 유위법은 모두 꿈과 같고, 환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이슬 같으며, 또 번갯불과 같으니 반드시 이와 같이 볼지니라”


대상을 접했을 때 그 상에 대해 메이지 말고 그 뒤의 무상함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스스로 제 자신을 바라봅니다.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 스스로를 비추어 보아도 이 몸은 항상 변하여 아주 자그마한 아기에서부터 지금에 이르렀고, 의식 또한 수시로 변합니다.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일정하다고 할 만한 저는 없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비춰지는 저를 찾아보았습니다.

능엄경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물 속의 해를 보아도 동쪽이나 서쪽으로 가면 물 속의 해도 제각기 두 사람을 따라 하나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갈 것이다.”


이 해도 결국 허상이겠지만 보는 이에 따라 하나의 해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의 해는 서쪽으로 갑니다. 각자만의 세계로 보는 것입니다. 사과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빨갛고 달콤한 사과를 생각하며 좋아한다면 또 어떤 이는 시다는 생각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나의 존재도 역시 그러해서 저를 두고“스님은 참 변함없어”하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스님은 참 변덕쟁이야”하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듣는 말에 따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언짢아 지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제 모습이 아니면서 다 제 모습입니다.


나란 존재가 일정하다면 보는 이마다 같은 말을 해 주겠지만 보는 이마다 저란 존재는 각각의 모습으로 보이듯이 일정함이 없으니 이것 또한 나의 존재가 무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쩜 나란 존재는 타인에게 인식됨으로써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인식되어진 것이 나이고 인식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나라면 인식되기 이전에 나의 존재는 무엇일까... 안으로 찾아보고 밖으로 찾아보아도 이렇다 할 제가 없습니다.

나의 존재가 이러하다면 내가 상대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느 한 스님이 있습니다. 어제는 이 스님이 너무 좋아 보이고 공부 잘하는 괜찮은 스님처럼 느꼈는데 하룻밤 자고 일어나 보니 그 스님은 정말 머터롭고 성격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 스님의 존재는 순간순간 나의 식에 의해 결정되고 존재할 뿐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식도 또한 무상한 것입니다. 갑자기 나의 세계는 무너지고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듯 느껴졌습니다. 이 때 전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금강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무릇 모든 상은 다 허망해 만약 모든 상이 상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 말씀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문장만 보았을 때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단지 상이 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을 뿐 “공”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금강경 전체를 통해 말씀해 주고 계신 건 무엇을 보았을 때 생각을 잘 보호하고, 머무르는 바 없이 하며, 법이 일어나지 않게 여여 부동하여 상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하십니다. 평정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래를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청풍료라고 하는 가상공간 속에 모여 있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함께 법문을 듣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각각 다른 법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라고 하지만 우리는 결코 무엇을 함께 한 적도, 만난 적도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 할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이렇게 무상한 것에 우리는 무엇을 보고 시시비비할 것이며 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의문입니다.

대중스님께서는 지금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차례법문을 듣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저를 보셨습니까?

법문은 들으셨습니까?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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