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차별에 집착하지 말라 - 석민스님(화엄반)

운문사 | 2006.07.18 17:17 | 조회 3582

“차별하지 말라. 설사 차별을 하더라도 그 차별에 집착하지 말라”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석민입니다.


출가해서 어줍잖은 행자 시절을 보내며 많이 걱정도 듣고 그러면서 강원이라는 데에 입방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좋은 게 좋고 편한 게 좋아서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지내온 나였기에 강원에서의 대중 생활, 특히 치문 시절... 스님들이 익혀야 하고, 지켜야 하고, 외워야 할 것들은 왜 이리 많은지. 내게 약속된 자유가 - 뭔가 새로운 삶이 기다릴 것 같았던 운문사의 생활이 다만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끔 코 끝을 스치는 나무들의 향기로움에 취해 보폭을 늦추며 목련 나무를 꺾을 때면 행복하다는 느낌도 들었지만“스님! 스님이 화엄반 스님인 줄 알아요!”어디선가 소리없이 나타난 상반 스님의 외마디 걱정은 잠깐의 그 행복감마저도 놓치기에 충분했습니다.

‘운문사에는 돌에도 눈과 귀가 달렸다더니...’출가는 그 어떤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길이라 생각했던 저에게 그 상반스님은‘스님들은 다 자비스럽다’라는 고정관념을 확 깨주는 선지식이었습니다.


우리 절은 서울 신촌인데 밤에도 환해서 불 안 키고도 생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밤이면 양보 없이 조명을 앞다투어 켜는 간판들의 모습들, 상상이 되십니까? 옛날 노스님께서 불사하실 때만 해도 주변 환경이 꽤 좋았다던데, 지금은 쭉 모텔이고 음식점들이라서 혹 반 스님들이“스님, 절은 어디예요?”하고 물을 때면,“우리 절은 도량만큼은 청정한 곳이예요”, 비유하자면‘진흙 속의 연꽃과 같은 절’... 그런 곳에 살다가 말로만 듣고 TV에서나 보았던 깊은 산속의 절. 산세 좋고 공기 좋고 이런 곳에서 풀 내음, 나무 향기...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머리 들어 하늘 볼 시간조차 없었던 치문반 시절, 서러운 마음에 이부자리 속에서 눈물 훔쳐가며‘내일은 꼭 집에 갈꺼야’ 하고 마음을 먹지만, 다음날 눈 뜨자마자부터 시작되는 정신없는 하루에‘짐 쌀 시간이 없어서 못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머터로움이 컨셉이 되어버린 저에게 운문사라는 곳은 정말이지 살기 힘든 곳이었습니다. 오죽하면 별명들이 다 머털이, 건달바우, 마침표였겠습니까.

걱정자리 시작과 끝을 알리는 한 마디 “석민스님”하면 시작되는 걱정이“석민스님 앉아요!”하면 끝난다고 해서 마침표라니. 힘들게 살아온 나의 운문사 생활이 이 별명 속에서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나름대로 정신없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상반스님의 걱정에 하루하루 착찹한 마음으로 힘들어하며‘욱’하는 마음에 잠깐, 다른 마음도 먹었었지만 그때마다 철없고 머터로운 저를 끈질기게 잡아준 건 지금의 도반스님들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다지 예쁜 구석도 없고 게다가 한 인상하는 중 하나가 철철 마다 집에 간다고 징징대는 모습! 좋아 보였겠습니까? 그래도 한 번 함께 회향해 보겠다고 어르고 달래고... 지금은“나가라고 떠밀어도 안 간다. 어떻게 올라온 화엄인데”하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힘들고 서럽고...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끔 도와준 반 스님들께 꼭 한 번 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도반스님들! 함께 갈 수 있는 도반이 될 기회를 선택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문 그때 그 시절 더 많은 공부가 된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번째 선택은 아주 탁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문사에서 4년을 살다보면 흥분했던 기억과 미워했던 마음, 가슴아픔과 부끄러웠던 순간들이, 마음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지극히 행복한 미소로 조금은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 준다는 것을 곧 알게 되시리라 확신합니다.

인생을 바꿀 소중한 마음의 지혜는 특별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냥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임을 믿으십시오.

사집반에 저랑 똑같이 생긴‘이뿐?’스님이 한 명 있는데요, 강원 간다 했을 때 운문사는 절대 오지말라고 말렸는데 그때가 제가 운문사에서 최고로 힘들었을 때였었나 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스님도 무척이나 힘들어 하더라구요. 시간이 지난 지금 형으로써 먼저 살아본 운문사 선배로서 말해주고 싶은 건 내가 선택한 것인만큼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또 자신이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롭기를 갈망하나 그 자유에 얽매여 자기 자신이 놓은 덫에 걸려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또는 보이는 모습이나 들리는 소리에 시비하거나 집착하며 생활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옳다, 그르다, 더럽다, 깨끗하다, 좋은 점, 나쁜 점, 머터롭다, 여법하다...라 하면서 마음으로 차별하여 집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차별하는 고정관념을 없앤다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저 스님은 좋은 스님이지만 이런 점은 결점이야’와 같은 생각을 자꾸 하면 그 스님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달라진 것은 그것을 보는 나의 마음인데 말입니다.


대중스님들!

때때로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도 있지만, 여유로운 마음과 담백한 미소를 지닐 수 있을 때까지 힘내십시오. 문제없습니다. 머트럽지만 이 자리까지 온 저처럼 말입니다. 반드시 잘 하실 것을 믿습니다. 부처님 되는 그날까지 우리 안의 불성도 시절 인연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며, 지금의 중생의 몸으로부터 佛身에 이르도록 굳게 금계를 지켜 범하지 않겠사오니, 오직 원컨태 모든 부처님은 증명하소서. 차라리 목숨을 버릴지언정 마침내 물러서지 않으리라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꼭! 성불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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