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신통묘용을 발휘하고 계십니까? - 종희스님

가람지기 | 2006.10.27 11:27 | 조회 2960

‘땅에 넘어진 사람은 다시 그 땅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 만약 그 땅을 떠나서 일어서려고 한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정해결사문』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의 마음을 미혹하여 번뇌를 일으킨 자는 중생이요.

그 마음을 깨달아 무한한 신통묘용을 발휘하는 이는 곧 부처님이시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이 그 땅을 떠나서 일어설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을 여의고는 부처님을 구할 수 없다.“


대중스님!

매일 내 마음의 무한한 신통묘용을 발휘하고 계십니까? 혹시 이런 내 마음은 여의고저 대웅전 법당에 계신 불보살님만 신통묘용을 부린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가끔 우리는 도반스님과 뜻하지 않은 일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던진 말이 서로의 가슴에 비수처럼 꽃힐 때도 있고, 사소한 의견 다툼은 어느새 묘한 신경전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생긴 서로간의 좋지 않은 감정들을 금방 풀면 좋겠지만 때로 우리는 그 스님을 이해하거나 용서하기 보다는 내 마음 속에 담아 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스님과는 후원소임 아니면 경상 짝지 또는 참 당번 짝지까지 서로 부딪쳐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리고 남아 있던 마음 속 그 앙금들은 이렇게 같이 소임을 살면서 사소한 신경전에서부터 그 스님에 대한 이유 없는 불평과 불만으로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올라옵니다. 마음이 이러니 소임 내내 서로가 편치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우리가 그런 마음들을 돌려 그 상황과 그 스님을 이해하고 바라보면 괴로움을 주는 경계도 결코 괴로움이 아니거니와 미운 사람도 정말로는 미운 사람이 아닙니다. 그 대상 경계가 본래 그 자체로 괴로움이라든가 미운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만 괴로운 상황이고 내게 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달라이라마 스님의 용서라는 책엔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 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이처럼 어떤 경계에 대한 나의 분별심과 편견을 내려놓고 그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내 마음의 평화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텐진빠모 스님이 운문사에 방문해서 하신 말씀 중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OK도 OK이고, NOT OK도 OK"라고 말입니다. NOT OK를 OK라고 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거스르는 그 어떤 경계에도 OK라고 긍정할 수 있으면 어떨까요? 그래서 그 상대와 상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라면 그리고 그 경계들에 대해 오히려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무엇이 우리 마음에 걸림이 있겠습니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온갖 시비분별과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우리지만, 맑고 밝고 또 향기롭게 그 마음들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신통묘용한 마음의 힘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어디 우리 마음의 신통묘용함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아침 저녁으로 지심귀명례 - 정성스럽게 예불 모시는 그 마음이, 그리고 대중스님들의 맛있는 공양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공양 짓고 국 끓이는 모습이, 머터러운 스님의 모습 역시 내 모습이라 생각하고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그 마음이 바로 우리가 매일 발휘하고 있는 신통묘용한 마음의 힘일 것입니다.

『능엄경』에, ‘거니순수(去泥純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 모든 분별 망상의 찌꺼기가 사라져 정말 청정한 빛을 발하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 상태는 참다운 지혜의 상태이며, 최상의 열반이고, 또 우리가 맛볼 최고의 기쁨일 것입니다.


대중스님!

매순간 내 마음의 무한한 신통묘용함을 여의지 않는다면 이 최고의 기쁨 또한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긴 가을철 건강 잘 다스리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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