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는 공부를 해도 모르니... (지공스님)

운문사 | 2006.04.10 12:54 | 조회 2926

봄이 무르익은 저녁입니다. 반갑습니다. 사교반 지공입니다.

얼마전까지만해도 환하게 핀 목련은 온 도량을 밝혀주었고 대중스님들을 설레게 해주었습니다. 목련의 향기가 더욱 진한 첫 철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도량에 퍼져있는 목련의 향을 맡게 된 것도 치문 사집을 보낸 올해가 처음이었습니다. 聞香이라합니다.

들을문 향향자인데 여기서는 문자로 쓰여 향기를 맡는다는 뜻입니다. 매일 목련나무를 꺽어 정랑을 다니면서도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던 치문시절. 온통 밭으로만 나다니던 사집때에는 제 눈과 마음은 목련이 피어도 볼 줄만 알았지 그 향까지는 맡을 줄 몰랐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 글귀처럼 지난 2년동안 운문사에서 맞이한 봄에서는 보고 듣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오고 귀에 붙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은 지났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갑던 봄철의 시작점에서 바라본 목련은 저걳이 언제쯤 꽃을 피울까 하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그래도 며칠간의 훈풍은 여지없이 꽃망울을 틔여 주었습니다. 운문사 큰 방에서는 9시 소등이후에 움직일 수 없지만 10시가 넘으면 정랑은 다녀올 수 있지 않습니까? 한낮에 활짝 핀 목련을 눈여겨 보았던 터라 10시가 넘어 살며시 정랑으로 향했습니다. 밤의 적적함만이 도량을 싸고 있는데 청풍료를 돌자마자 목련의 향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파도가 밀려오듯 스미는 목련의 향은 코뿐만 아니라 온 몸의 신경을 깨우는 듯 했습니다. 어둠 속에 둥그러니 서있는 목련나무 곁으로 가 보았습니다. 나무 밑에서 바라본 밤 하늘은 목련과 별들이 어우려져 있어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마음을 뺏긴다고 하죠?

아마도 그날밤 저는 목련 꽃에 마음을 빼앗긴 듯 합니다. 금당으로 다시 발길을 돌리며 저는 목련에게 빼앗긴 그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능엄경에서 아난존자는 마음과 눈이 어디있냐는 부처님의 질문에 모두 일곱군데로 대답합니다. 아난존자는 자기가 분별하는 이 마음 허망한 이 마음을 가지고 眞際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난존자가 대답한 7군데의 마음자리를 부처님께서 모두 틀렸다고 말씀하시자 아난은 “그래도 마음있는 처소가 있을 터인데 제가 모르니 그 있는 처소를 말씀해 주십시오”그 마음이 허망해서 眞이 아니라는 걸 몰라서 부처님의 32상을 보고 좋아하여 출가하게 된 그마음 그 마음있는데를 모르겠다며 거듭 묻습니다. 분명히 내속에 있어 내가 행동하고 느끼는 것이 나인데 저 목련을 보고 빼앗긴 그것이 내 마음에 아니라고 하면 무엇이 진짜 마음일까요.


눈으로 목련을 보고 코로 그 향을 맡은 것은 환경입니다. (능엄경)에서는 감각기관을 가지고 주위환경을 인식할 수 있는 그 환경을 전진(前塵)이라합니다. 전진의 허망한 모양이란 우리는 사람이고 눈앞에 펼쳐진 이 세계가 여기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전진의 허망한 존재이지 참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육근의 감각기관일 뿐 實際는 보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은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 모양이 분명하니까 실로 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이 전진의 지배를 받는 것이 생사하는 근본입니다. 전진의 허망한 모양을 인식해 아는 그것이 참 마음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능엄경의 처음에 아난존자는 시방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사마타 삼마 선나의 셋을 묻는데 부처님께서 답하시길 이러한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는 공부를 해도 모르니 그걸 떼버려야 된다고 하십니다. 수행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본래 우리에게 구족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능엄경)10권을 아직 끝까지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허망하다는 이 식의 자리와 6근문두(六根門頭)의 성품의 참된 자리를 제 생활 속에서 제대로 찾을 줄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들은 어른스님의 마음자리로 차례법문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같은반 스님이 입학시험보러 운문사에 온 날 노스님께서는 도반스님을 데리고 같이 종무소로 들어가셨습니다. 노스님께서는 “야야! 선배스님들한테 어서 절해야지”하며 종무소에서 서류 접수를 하던 학인스님들에게 주저없이 맨바닥에 먼저 절하셨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말없는 그 어떤 뭉클함이 제 가슴에 남았습니다.

저 또한 평생 마음자리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수행자로 마지막날까지 정진여일 하겠습니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