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는 법(선유스님)

운문사 | 2006.04.10 13:35 | 조회 3163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선유입니다.


서장 대혜스님께서 증시랑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로부터 발심해서 일백일십유순을 거쳐 53선지식을 참례하고는 맨 마지막에 미륵보살이 한번 손가락을 퉁기는 순간 그 이전에 모든 선지식으로부터 얻은 법문들을 모두 다 잊어버리고, 다시 미륵보살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또 문수보살을 뵐려고 생각하자마자 문수보살이 멀리 오른손을 펼치시어 일백일십유순을 지나 선재의 이마를 어루만져 주시며 말씀하시길“착하고 착하다. 선남자여! 만일 믿음의 뿌리를 여의었던들 마음이 비열하고 용렬하여 작은 공덕에 집착하여서 이와같은 법성과 이와같은 해탈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선재동자는 이 말씀을 듣고, 아승지법문을 성취해 보현의 모공세계로 들어가 삼천대천 세계 미진수의 모든 선지식을 뵙고 친근하여 공경히 받들어 섬겨 그들의 가르침을 수행하여 불망념지 장엄해탈을 얻고 마침내 보현보살과 동등한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처음 삭발하던 날, 은사스님께서는‘모든 일에 신심을 가지고 지극한 정성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信心, 정성... 그 말이 퍽 생소하고 멀게만 느껴지고 막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슴속에서 그말을 몇 번이나 되새기며 저의 행자 생활은 시작되였습니다. 처음으로 해본 공양짓기... 가스불에 가마솥을 걸고 밥짓는 순서를 머릿속에 그리며 시간을 맞추어 지은 공양. 은사스님께서는 묵묵히 드셨고 저는“합격”이라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초조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음날 지은 공양... 스님께서는 “좀되다” 그 다음날은 “질다” 또 그 다음날은 “뜸이 덜 들었구나! 불조절을 어떻게 하길래...”, 또 설익었다고 하시는 등 한마디 툭 던지시는 말씀에“합격”이라는 생각은 자화자찬이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날 밥을 태워버리고는 조여드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렸는데 스님께서는‘그럴 수 있지’하는 표정을 지으시며 묵묵히 드시는 모습에 송구한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몇칠 뒤 사형님께 무척 걱정듣던 날, 스님께서는 공양을 받으시고는 “밥이 왜이리 맛이 없느냐”고 큰 걱정을 하셨습니다. “이상하다 평상시와 같게 공양을 지어올렸는데..., 뜸이 덜 들었나”내심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러신걸까” 자는둥 마는둥 하고는 도량석을 마친 후 다시 공양을 짓고, 그래도 은근히 신경 쓰이던 차에 스님께서는“정성이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순간, 어제 사형님께 걱정들었다고 심술내고 원망하고 들뜬 마음이 공양을 짓는 일에까지 그대로 전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끄럽고 미안하던차에 장이 안좋으신 은사스님께서는 흰죽이 몸에 좋다고 하시며 죽을 드신다 하시길래. 저는, 처음해보는 죽을 끓인다고 원주스님께 부탁드리며 전수를 받았습니다. 쌀을 박박치대고 불에 앉히고, 쌀뜬물을 붓고, 젓고, 끓이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열심히 염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스님께 참회하고 쾌차하시길 기도 드렸습니다.


그러길 한달... 그날도 여지없이 죽을 드셨는데 스님께서는 너무도 온화한 음성으로 “정말 맛있구나! 잘 끓였다.”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모든 일에 신심을 가지고 정성껏하면 마음이 유순해지고 한곳으로 집중되어 작은 일에도 한없는 공덕을 지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혜스님께서 허사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信爲道元功德母라 믿음은 도의 근원과 공덕의 어머니라.

長養一切諸善法이라하며 일체의 모든 선법을 길러내며

信能增長智 功德하고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증장시키고

信能必到如來地라하시니라 믿음은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게 한다라 하시니라


신심이 근본이라고 하신 부처님말씀과 저 선재동자의 변치 않는 신심과 지극한 정성으로 보현의 행문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대혜선사의 말씀을 통하여 저의 운문사 생활을 자문해 보게 합니다.

. 매순간 은사스님께서 당부하신 대로 온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성심껏

살고 있는가?

. 잡다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마음이 온전히

살아 있는가?

. 시비가 교차하는 곳에서 ‘우리도 부처님과 다름없는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잊어버리고, 범부의 뜬정으로 속을 끓이고 있지는 않는가?

. 혹 퇴굴심을 내어 부처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느날 새벽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데 가사장삼을 수하고 안행하는 대중스님들이 모두 부처님으로 보였고, 또 산천초목을 보면서 저들도 모두 불성을 지닌 존재임을 마음깊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비록 어려운 난관이 닥쳐오더라도 나도 할 수 있다는 대긍정심을 가지고 지극한 정성으로 수행해보지 않겠습니까? 정진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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