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사고변화가 주는 깨달음의 길(치항스님)

운문사 | 2006.04.10 13:37 | 조회 2775

한 해가 또 지나가고 있습니다. 대중스님들은 무엇을 얻으셨습니까? 또 무엇을 잃으셨습니까? 우리는 신문지를 잃어버린 대신 비닐을 얻었고, 마차와 인력거를 잃는 대신 자동차의 편리함을 얻었으며 뛰어놀던 추억의 뒷동산을 잃는다신 도로와 터널을 얻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좋고, 옳은 것일까요.


최근에는 산중까지 밀치고 들어오는 건물들 때문에 오염을 막는 환경문제 안건을 가지고 되도록,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우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방학 후 절로 돌아가면 절 뒤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고자 고급건물들이 산 정상에 들어와 자연을 훼손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님들은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댑분 환경문제 환경문제 하면서도 진정 정확한 의식은 없습니다. 단지, 쓰레기 분리수거하고 물을 아껴 쓰자는 말 이외에는 말입니다. 불교와 우리가 생각하는 환경문제는 무엇과 연관이 있겠습니까? 환경보호운동 아래 서명운동을 하다보면,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연을 살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서든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연을 파손시키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 스님들은 어떻습니까. 무관심하진 않으십니까? 어느 땐 속세 사람들보다 더 외면해 버리는 스님들 모습에 저는 때론 상처도 받지만, 어른 스님들의 확고한 믿음이 계시기 때문에 묵묵히 따르다가도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어, 개학 후 다시 운문사를 향할 때의 제 마음은 늘 답답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수업시간에 법성게 구절 中 강사스님께서 풀이해주신 말씀이 나의 의문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하나 가운데 일체 있고, 많은 가운데 하나 있는지라. 하나가 곧 일체요, 많은 것이 곧 하나일세, 티끌 무더기도 또한 이와 같네.

한순간이 곧 영겁의 시간이라.


운문사 주위에 있는 나무를 보십시오. 수십만장의 나뭇잎이 가지마다 달리 떨어지는 것이 별개라 보여지지만 그것은 줄기와 뿌리로 해서 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기와 태양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중중첩첩 연관되어 중중 무진 연기로 표현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목소에서 손 한번 씻는다고 오염되고, 소나무 한 그루가 죽는다고 숲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몸에 피한방울이 없어져도 우리 건강을 해치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 방울 일지라도 계속 없어지면 건강을 헤치게 되고 결국엔 죽습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환경문제는 이런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의 존재만 생각할 뿐 보이지 않는 존재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중요하겠습니까? 고여있는 물에 너무 많은 나뭇잎이 떨어지면 그 물은 썩어 먹지를 못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산의 흙으로 들어가서 나뭇잎이나 땅속을 관통해야만 약수물이 됩니다.


대중스님 처음부터 약수물이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환경문제에 대한 걱정은 우리가 인식하는 그 자체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나오지 않도록 신경쓰는 것보다 썩어 없어지는 것을 사용하도록 노력하고, 풍요로운 생활보다는 조금은 적게, 조금은 배고픈 생활로 돌아간다면 어떻겠습니까. 발우 공양하는 습관이나 자급자족으로 해결하는 식량문제 등 검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많은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사고의 전환은 바로 개인 삶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는 우리 생활 양식으로 바뀌어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잃을 것도 더 이상 무엇을 얻을 것도 없는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항상 여일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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