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출가의 인연(원담스님)

운문사 | 2006.04.10 13:38 | 조회 3450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원담입니다.

이제는 운문사의 도량에 익숙해져서인지 가는 곳마다 정이 깃들어 집니다.

봄을 지나 완연한 여름이 오는 이 길에 운문사는 참으로 덥습니다. 뜨거운 햇살을 바로 맞으며 땀방울이 또르륵 얼굴을 타고 내릴 정도로 열심히 운력하는 가운데 운문사의 여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 이렇게 땀을 흘려 보았겠습니까? 어느 곳을 가도 에어컨 바람이 우리 몸을 시원하게 해주는 곳에서 살았던 우리들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에어컨 바람보다는 땀방울이 맺혀있는 얼굴에 불어오는 산들 바람이 더 시원하고 좋습니다.

비록 늦은 나이에 출가했지만 이렇게 대자연 품에서 여러 대중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부처님과 여러 어른 스님들, 대중스님께 감사를 드리며 오늘은 제가 출가하게 된 인연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제 경우에는 부처님과의 인연이 그리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때 저는 불교라고 하면 미신이라고 터부시하고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과의 인연은 내 안에 있었나 봅니다. 살아가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깊은 허무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렇게 사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이 아닌 듯 싶어 주위를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동안 그렇게 무시했던 불교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또 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절에 가고 싶은 생각에 부모님께 의논을 드렸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마치 제가 절에 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친척이 있는 곳에 가든지 아니면 다른 데로 가든지 선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생각해보니 새로운 곳에 대해서는 어쩐지 자신이 없어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부터 알고 있던 절로 들어가기로 마음먹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집을 떠난 후 하루도 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절의 여러 가지 일을 보면서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처음에는 “절에 오는 사람들은 행복해서 오는 게 아니고 괴로워서, 슬퍼서,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오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보살님들과 대화를 할 때면 말이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영문을 모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행복해지려고 오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알던 방법은 참선과 염불뿐이었기 때문에 저는 좀 쉬워 보이고 사찰의 여러 가지 일을 보면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염불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초가 없는데다가 늘 그렇듯이 절은 여러 가지 일들로 바빴기 때문에 오롯하게 혼자 염불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어느 날 할머니 한분이 오셔서 자식 때문에 힘든데 산신각에서 기도를 하고 싶은데 어떤 염불을 하면 되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멀리 떨어진 산신각에서 하는 염불이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사랑대신’이라고 들었던 것 같아 보살님께 그렇게 하면 된다고 가르쳐드리고 다른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뒤 어느 보살님이 저에게로 오시더니 어떤 할머니 한분이 산신각 앞 바위에 걸터앉아서 ‘사랑대신’을 2시간이 넘도록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막 웃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뭔가 잘못 되었구나’는 생각이 스치면서 사방이 까마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얼른 책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사랑대신’이 아니라 ‘산왕대신’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실수였습니다.

이렇게 실수를 하며 절에서 지낸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주위에서 스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그러기엔 이미 늦었다는 말을 들으며 이럭저럭 지내던 어느 날, 저는 생전 처음 사리암에 가게 되었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한 작은 법당에서 저는 열심히 염불하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아마 그 스님은 당시 운문사 학인스님이었겠지요. 그곳에서 염불하는 비구니 스님을 보면서 나도 저곳에서 염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반존자님께 43살에 부처님 제자가 되어 큰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 후 몇 번 사리암에 가서 기도를 하고 열심히 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서원대로 저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마흔 셋이라는 나이에 사미니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내년에 사집반이 되면 사리암에서 기도를 할 수 있고 하니 이 모두가 나반존자님의 가피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내년에 사리암에 가면 어떤 감회가 생길지 궁금해서 빨리 사집반이 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 배운 치문의 한 구절입니다.

“可惜寸陰하야 當求解脫이라”

“촌음을 아껴서 마땅히 해탈을 구할지니라.”

여기서 촌음은 아주 짧은 시간을 말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저는 비록 늦게 출가하였지만, 늦게 출가했다고 생각지 않고 오직 이 길에 물러나지 않고 부처님 제자로서 촌음을 다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습니다. 더운 여름 대중스님 모두 건강 주의하시고, 정진여일하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