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나는 수!행!자!입니다' (수안스님)

운문사 | 2006.05.23 11:04 | 조회 2960

너희는 모두 나의 아들이오, 나는 너희 아버지이니 너희는 무수한 겁에 한없는 괴로움을 겪고 있노라. 내 너회를 모두 건져 삼계를 벗어나게 하리라.

45년간 대중과 지식인 계층에게 모범적인 삶과 가르침으로 이 세상 최초로 가장 적극적인 진리의 전도자로, 종교적 설법자로, 수행자로 인류를 위해 살고가신 부처님 말씀입니다. 반갑습니다. 화엄반 수안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떠난 것은 적정처로 가기 위한 것이오,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것임을 이 끝없는 구도의 길에 들어 선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가지 떠난 잎처럼 삭발한 머리 위를 훍고 지나는 이 초가을 바람결에도 ‘너는 어째서 출가 했는가’라는 수 없이 던져진 자문에 ‘나답게 살기 위해서’라고 제자신의 단순한 대답대신 이젠 승보의 한 사람으로 대승본래의 빛나는 불교정신이 투영되는, 대중적인 실천으로 이끌어 낸 ‘上求菩提下化衆生을 생각하며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작성해 오라며 설문지를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다.

은사스님께서 그날, 그 설문지를 보며「직업」란에서 멈추시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시며“중이 직업이 어딨노? 그냥 중이라 쓰면 되나?”하시며 기재 하시려는 것을 펄쩍 뛰며“중이 뭐예요? 좀 세련된 말로 써주세요.”라며 실갱이를 하였습니다. 다음날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의 설문지를 훑어보며 아버지가 목사님인 친구의 설문지에 적힌‘성직자’라는 단어를 보며‘아, 이거구나’싶어 세련된 단어라 내심 확신하고 얼른‘스님’을 지우고‘성직자’라고 고쳐서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스스로의 노력으로 사물과 자기의 마음을 분석해 이해하며 수행을 통해 의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출가 수행자는 다른 중교의 사제나 성직자처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아니라는 것을 은사스님처럼 출가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성직자가 아닌 수행자’

수행자란 닦고 실천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사실 수행자의 의미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으로 나올 수 있고 수행법 또한 참선이니 염불 등등의 여러 가지가 있으며 삼법인설로부터 연기, 사제, 육바라밀설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편과 같은 많은 법문이 있습니다. 이런 대승불교의 수행으로 이루어야 할 원력인‘上求菩提 下化衆生’은 대승적 삶의 준칙으로 위로는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고 하지만 온전한 지혜를 성취한 후 자비를 실천하려면 언제 자비를 실천한단말인가? 하는 의문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보살의 불교적인 이상은 바로 일상의 현실 속에서 실천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上求’란 부처님과 윗사람에게는 항상 바른 삶의 길을 묻고 배우고 행하면서 항상 새로운 지혜를 탐구하는 개인적인 영역이며‘下化’란 가르침을 베풀어 이끌어야 할 사람들에게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반야의 육바라밀의 행으로 섭수하는 사회적인 영역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입니다. 그런 만큼 이‘上求’를 통한 개인적인 완성은 물론‘下化’가 가능할 정도로 높은 인간적 성숙과 지혜가 무엇보다다 필요합니다.

‘下化’란 그 자체 역시 개인적인‘上求’보다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것인지 그래서 불교에서는 입문자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으로 절대적인 믿음과 발심, 그리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행’을 강조합니다.

선재동자가 마지막으로 보현을 찾았을 때 보현은 선재의 지극한 구도심을 칭찬하면서 부처님처럼 한량없는 공덕을 이루려면 큰 서원과 수행을 쌓아야 한다고 일러 줍니다. 불법은 현실의 법이요, 생활의 법인 것임은 내 이웃이 보살 되는 것이 곧 여래를 만든 일이며 그 자비를 실천하며 깨달음의 완성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苦에서의 해탈은 물론 모든 생명체가 부처님의 진리를 구현하도록 서로 이끌고 헌신해야 하는 보살적인 수행의 완성을 위해 우린 지금 현재 처한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해야 하겠습니다. 열심히 경을 보고 마음으로 익혀 한 순간, 한 찰나마다 정성스럽게 자시모가 마주하며 절제된 말과 행동 그리고 감각을 제어하면서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발전해 갈 때 업의 힘이 자신에게 세속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진정한 구도자의 삶을 살도록 이끌 것입니다. 「너희들은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여래는 단지 스승일 뿐이다」라는 말씀처럼 이 길을 가고 않음은 각자의 몫입니다.

눈먼 사람이 길잡이가 될 수 없듯이 지혜가 없이 자비를 실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떤 수행자로 살아 갈 것인지, 이 4년 동안의 강원 생활속에서 확실하게 세워야하며 그러한 믿음과 서원으로 뚜벅뚜벅 황소처럼 걸어가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방학 중에 개학을 앞두고 저희 절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함께 사시던 스님께서 병고로 입적하셨습니다. 난생처럼으로 저는 염하고 입관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수의는 일반인과 다른 승복으로 고의, 적삼, 장삼까지 갖추어 입혀졌고 입관 후 맨 위에는 마지막으로 가사가 엎여졌습니다. 결코 길지 않은 이 삶속에서 불법 만난 지중한 인연도 감사하지만 주검위의 덮여진 한 자락 가사 위로 새겨졌던 한 수행자의 삶이 더욱더 감사했습니다.

수행자이기에 아름다운 그 무언가를 가슴 속에 새기며 수행자이기에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행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우린 저절로 수행자가 되어 갈 것입니다. 나약한 중생의 마음으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 당당한 수행자의 한 마음에 의지하여 이 거친 세상 밝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수행자입니다. 수행자이기에 참으로 당당합니다. 수행자이기에 참으로 행복합니다. 참으로 나를 당당하게 일깨워주는, 경책해주는 한 마디! 바로‘나는 수!행!자!입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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