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탁발의 의미(경일스님)

운문사 | 2006.04.10 12:15 | 조회 3508

부처님 당시 스님들이 지켜야 할 출가생활의 원칙으로 사의법이 있습니다.

식생활은 걸식에 의지하고 의복은 분소의로 해결하며, 나무 밑에서 잠자고 수행하며 소의 오줌 등을 약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사의법이 생기게 된 동기는 이렇습니다.

재가신자들이 승단을 위해 공양 올린 것을 한 바라문이 보고, 음식에 탐이 생겨 출가하였습니다. 어느 날 음식을 올리는 공양이 끝나자 동료가 걸식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걸식이나 하기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니, 만약 그대들이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준다면 먹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승단을 떠나겠오.”

이 소식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그런 행동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더욱 믿지 못하게 하고, 믿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부는 그 믿음을 잃게 된다’하시고 사의법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출가자의 생활원칙이 되었는데, 오늘은 그 가운데 ‘걸식’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걸식의 의미는 첫째, 밖으로 밥을 빌어 육신을 유지하고 안으로 법을 구하여 법신을 증득한다. 둘째, 하심을 수행케 하여 교만한 마음을 없앤다. 셋째, 밥을 주는 재가자에게는 자기 물건에 탐욕의 마음을 끊고 복을 짓게 한다. 넷째, 몸에 괴로움이 있음을 알게 한다.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또, 걸식할 때에는 위의를 엄정하게 하고 빈부를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해야 합니다. 또, 차례로 하되 일곱 집을 넘지 말아야 하며, 발우가 다 차지 않더라도 돌아와야 하고, 주지 않더라도 억지로 달라고 애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걸식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탁발’입니다. 탁발이란 말은 범어로 걸식을 뜻하는 빈다파다의 음역이며, 중국 송나라 때부터 사용되었다 합니다. 의탁할 탁, 발우 발. 즉 탁발은 목숨을 발우에 기탁한다는 의미지요. 우리가 발우를 들고 탁발하는 것도 바로 걸식해서 얻어진 음식물을 담기 위함입니다.


시대와 문화, 기후 등의 차이로 탁발수행도 조금씩 변화하게 되는데, 남방 불교권에서는 지금도 스님들의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의식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는 귀족불교적 전통이 남아있어서 탁발은 하지 않지만 수행의 한 방편으로 가끔씩 행해지고 있고, 음식물이 아닌 돈이나 쌀을 탁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출가수행자의 생활수단이었고, 12두타행 가운데 하나였던 탁발수행을 생각하면서, 제가 강원에 오기 전에 경험했던 이야기 한 토막을 할까 합니다.


대중스님!

혹시 탁발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가사장삼을 수하고, 흰 장갑을 끼고, 걸망을 메고, 목탁을 쥐고, 발우를 들고, 어디서 본 듯한 탁발모습을 떠올리며, 들뜬 마음으로 시장 한 복판에 섰습니다. 세 명이 염불을 하긴 해도 탁발이처음인 우리는 어설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탁에 맞춰 해탈주를 치면서 생선 파는 가게에 멈췄습니다. 염불을 하고 내림목탁이 또르르르. 저도 모르게 발우를 보살님 앞에 쑥 내밀었습니다. 순간, 동전 하나가 땡그랑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돈 달라고 내밀었던 손도 손이지만, 동전소리에 저는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나 여법하게 차려입고, 큰 소리로 염불을 했는데 꼴랑 500원이라니.’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되돌아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기만 했습니다. 탁발해서 불사금에 보태겠다고 은사스님께 큰소리 치고 나왔는데 말입니다. 바로 그때 호박 파는 보살님이 천 원짜리 지폐를 들고서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스님예! 우리 집에도 빨리 염불해주이소.’형님들은 얼른 목탁을 쳤습니다.


콩나물, 깻잎, 오이 등을 조금씩 놓고 파는 보살님들, 과일을 파는 노점상과 떡집을 차례차례 지나면서 탁발이 낯설지 않게 되었고, 염불째도 잡히고 부끄러움도 사라지고 돈도 자연스럽게 받았습니다. 어느새 발우 안에는 꼬깃꼬깃한 지폐와 동전들이 가득 찼습니다. 그 기쁨과 감동은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불사중인 은사스님께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큰 기쁨이었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찡하게 했던 것은 콩나물 1000원어치, 깻잎 몇 묶음, 상추 한 소쿠리 팔아 자녀를 교육시키며 살아가는 분들이 아낌없이 보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분들에게는 500원, 1000원이 꼴랑500원, 꼴랑1000원이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적은 돈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면서, 한 집 한집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염불을 했습니다.


진짜스님들이라면서 좋아하시는 노보살님, 장사 잘 되게 해달라는 보살님, 아들 장가 좀 꼭 가게 해달라는 보살님 등 집집마다 기도제목을 다 들어주다보니 제가 마치 불보살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피곤도 잊어버리고 종일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야말로 불보살이란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남의 돈 얻기가 이렇게 어렵고, 시주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체험했습니다. 또 뭔가 해냈다는 사실에 가슴 한켠이 꽉 차는 뿌듯함도 느껴보았습니다. 그제서야 탁발해서 불사하는데 조금이라도 돕겠다고 나선 저희들에게 별말씀 없이 3일의 시간을 뚝 떼어주신 은사스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우리는 3일 동안 탁발한 금같은 돈으로 옥촛대를 불사했습니다. 지금도 그 촛대를 보면 저희들을 기특해 하시던 은사스님과 꼬깃꼬깃한 돈을 발우에 넣어주시던 그분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대중스님!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시주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고마움을 쉽게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시주자의 간절한 기도가 깃들인 공양물에 좋다, 나쁘다, 많다, 적다는 분별심을 내지는 않습니까? 그 공양물을 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선방스님의 말에 의하면, 이런 스님도 있다고 합니다. 결제기간 동안 산을 타고 남도에서 태백까지 종주한다거나, 3개월간 탁발하는 것으로 한 철을 결제하기도 한답니다.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고, 부처님 경전을 열심히 보는 것만이 공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다가 무디어진 자신을 향해 채찍질 하고플 때 ‘탁발’을 떠나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분명 초심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초심으로 열반에 이르기까지 법만을 생각하고 법만을 구하는 참된 수행자로 살아갑시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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