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처음 그 마음(송현스님)

운문사 | 2006.04.10 12:16 | 조회 3084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송현입니다. 몇 십년 만에 찾아온 폭염. 무척이나 무더운 여름철입니다. 며칠 남지 않은 여름방학을 앞두고 오늘 풀매기 대중 울력이 있었습니다. 모두 근념하셨습니다. 여름철 마지막 차례법문 오늘 저는 初心이란 주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일에 별 흥미가 없었던 저는 부모님의 바램과는 아랑곳없이 자유분방하게 사는 딸이었습니다. 큰 고난이 없었기 때문인지 세상은 苦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친구들은 죽음에 대해서 고민할 때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중 3 때 겪었던 할머니의 죽음에 다시는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저 슬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느 늦가을. 새까맣고 표정 없는 얼굴에 깡마른 체구의 한 여학생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 코피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몇 날 몇 일 멈추지 않고 결국 순간순간 수혈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는데 예고 없이 반복되는 병원생활.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의 그림자. 그 후로 저의 삶은 더더욱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렸고 자꾸만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길을 가다 답답한 마음에 들어선 절. 불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던 저는 우연히 들은 천수경 내용 중에서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즉 죄는 자성이 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만약 마음이 소멸하면 죄 또한 없어지네” 라는 말에 괴롭고 답답하던 마음이 순간 사라지고 작은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출가 할 인연은 이렇게 다가왔고 출가를 했습니다. 그저 환희롭고 기뻤습니다. 실수를 해서 어른 스님들께 신심 없다고 걱정을 들어도 저의 마음은 항상 신심충만 이었고. 추운 겨울 밖에서 일을 해도 즐거웠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었습니다.


초심(初心)은 처음 시작하는 마음이며 너무나 순수한 마음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순수하고 온전히 비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했습니다. 하물며 세속의 욕망을 벗어나 佛法을 처음 배우는 우리의 첫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참으로 위대하고 숙세의 선근善根이 없이는 절대로 아니 된다 했습니다. 初心은 초발심(初發心)의 뜻으로서 처음 마음을 發하여 일으키는 시작의 마음이며 發心은 발 무상보리심을 줄인 말로써 부처님이 증득하였던 가장 높고 거룩한 깨달음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이 發心입니다. 信心은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법을 확실히 믿어 의심치 않는 마음이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피곤하고 힘들다는 이유로 이 핑계 저 핑계로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쉽고 편리한 것만을 스스로를 급급해져 버렸고, 앞뒤를 따져보아 남보다 더 손해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도무지 쓸데없는 욕망과 집착인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비록 지금의 모습이 이러할지라도 처음 발했던 그 빈 마음에 물러나지 않을 신심만 있다면 우리의 수행에 익은 것은 설어지고 선 것은 자꾸 익어져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 큰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법은 배우면 배울수록 매력이 있어서 도저히 물러 날래야 물러날 수 없다 하셨고 수행의 길을 올곧게 걷는 이에게는 항상 맑은 향기가 난다 하셨습니다. 대중스님 初發心時便正覺이라, 처음 마음을 발한 바로 그 때가 바른 깨달음을 이룰 때라고 하셨습니다. 간절하게 처음 발했던 그 마음 잊지 마시고 정진여일 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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