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믿음의 결과 (정범스님)

운문사 | 2006.04.10 12:19 | 조회 2976

꾸준히 정진하고자 하는 화엄반 정범입니다. 봄방학 내내 고민했습니다. 다들 문장실력과 기도해서 영험 보았다는 얘기로 한 법문하는데, 나는 무엇을 대중에 내 놓을 것인가? 고심 끝에 처음 절에 발을 내딛던 저의 못난 시절에서 화엄에 이르기까지 변화한 모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가 발을 딛은 곳은 조그만 암자입니다. 어슴프레 어둠이 깔릴 무렵 낯선 고장을 찾은 저는 사람에 대한 무서움, 귀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어디든지 들어갈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 잠긴 대문을 두드리면서 ‘열어주지 않으면 어떻하나?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하지?’. 잠시 뒤 삐그덕 대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그 안의 전경은 꼭 천국을 보는 듯 했고 제 앞에 서 있는 스님은 꼭 선녀님 같았습니다. 와 ! 이럴 곳도 있구나. 절은 사바세계가 아닌 천상으로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둘째 날부터 스님공양상 차리기, 마지밥 하기, 법당청소, 정랑청소, 염불 배우기 등 초심자가 해야 할 일을 배웠습니다. 절집은 세속과는 달리 상하복 가리는 법, 차수하는 법, 대방출입하는 법, 청소하는 법, 정랑사용하는 법까지 참 여러 가지 다양한 법법들이 많았습니다. 와 ! 절집은 쉬운 것도 어렵게 돌아가는 법이로구나!


몇 년이 흘러 강원 올 때가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그럭저럭 몸에 익혀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반찬하고 국 끓이는 것은 여전히 솜씨가 없어서 후원에 들어가면 쩔쩔 맸습니다. 아랫사람도 들어오고 했으니 훌륭히 그런 일들을 척척하면 폼도 날 텐데 사형이 되어서 못하는 모습이 제 스스로 느끼기에 창피하고 면목이 없었습니다. 법당에 들어가서도 염불을 시원스레 하면 옆사람 신심도 나고 할 텐데 그러지도 못하고, 이러한 마음이 항상 있어서 강원 와서도 누가 반찬을 맛있게 하면 “이건 어떻게 합니까?” 묻기에 바빴습니다. 혹 다른 곳에 가서도 반찬이 맛있다 국이 맛있다 하면 스님이든 보살님이든 가리지 않고 묻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염불은 도량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큰소리로 했습니다. 아침에 너무 큰소리로 108 대참회문을 하면 힘이 다 빠져서 입선 때가 되면 폭 고꾸라 지기가 일쑤였습니다. 하루는 수업시간에 강사스님이 국맛을 다섯 번 보고도 싱거운지 짠지 구분 못하면 그 사람은 요리에 재능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제 얘기였지만 전 요리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단지 남들보다 조금 더디게 걸릴 뿐 반복해서 하고 또 하면 잘 할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사교반 때는 상채공 소임을 나가야 하는데 재료다듬기, 국 끓이는 방법은 귀동냥으로 알았지만 정작 국 맛은 짝지스님이 다 봐 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 스님들은 아직도 제가 요리를 잘 하는 줄 압니다. 지금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방학 되면 집에 가서 스님 공양상 차려드릴 솜씨는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사제가 “형님! 요리 못했잖아요?”라고 묻습니다.


봄방학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법당에 들어가서 소리를 크게크게 질렀습니다. 늘 저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시던 사숙님이 “예전에는 고래고래 질러서 듣기 싫더니만 지금은 큰 소리로 하는데 듣기 싫지는 않네?” 한 번은 힘도 빠지고 살도 빠진 저에게 스님께서 불러놓고 “이젠 그만 소리 좀 질러라. 그만 목 틔워도 된다. 네가 몸에 비해 너무 소리를 지르니까 살이 빠지고 힘이 없는거야.” 그럼 전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제 목소리를 듣는 이 신심과 환희심이 나도록 하고 싶습니다.”이번에 행자님이 한 명 들어왔는데 정말이지 제 목소리를 듣고 반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묻길래, “무조건 법당에 들어가서 큰소리로 염불해요. 도량석, 쇳송, 정근 가리지 말고 무조건 큰 소리로!” 저의 영향을 받은 행자님은 그 이후로부터 제 말만 믿고 큰 소리로 염불을 했는데, 기도보살이 이 광경을 보고 신심이 나서 오이 한 박스, 호박 한 박스를 사왔다고 합니다.


다음은 옛날 얘기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잘 듣고 잘 생각하고 잘 이해하셔야 무슨 말이닞 아실 수 있습니다. 옛날 어느 조그만 암자에 노스님과 동자승 한 명이 살았습니다. 한 날은 “얘야 ! 내가 시장엘 갔다 올테니 장독 씻어다 뒤집어 놔라.” 동자승은 장독이 버선 뒤집듯이 양말 뒤집듯이 뒤집는 건 줄 알고 겉과 속을 확 뒤집어 놨습니다.... 고정관념이 있는 저희로서는 믿기지도 않을 얘기를 이 동자승은 정말 단지를 양말 뒤집듯이 뒤집은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우리의 생각은 가능할 수 있게 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게도 합니다. 자경문에 “도가 사람을 멀리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가 도를 멀리한다. 내가 도를 알고자 하면 도가 스스로 따라온다.”라 하였고,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다고 부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내일 안 되면 모레 포기하지 않고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한다면 되지 않을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 항상 밝고 맑은 마음으로 사람과 사람을 긍정하고, 부처님 법을 긍정하고, 성불할 수 있음을 긍정하는 마음으로 수행합시다. 제가 좋아하는 게송 하나 읊고 법문을 마치겠습니다.


아미타불재하방 阿彌陀佛在何方

착득심두절막망 捉得心頭切莫忘

염도염궁무념처 念覩念窮無念處

육문상방자금광 六門常放紫金光


나무 아미타불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