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부처님의 가피(동조스님)

운문사 | 2006.04.10 12:23 | 조회 3526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동조입니다.

오늘은 제가 새 중으로 있을 때 겪었던 일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수덕사 견성암으로 출가했습니다.

여름에 출가했는데 그 때 하안거 기간이었고 행자가 7명이었습니다.

견성암에서는 처음 출가하면 먼저 설거지 행자를 거쳐 채공이나 공양주 소임을 맡고 그 후 큰방 행자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도 여름엔 설거지 행자였다가 가을이 되어서야 공양주 소임을 맡아 가마솥에 밥을 지었습니다. 그때 후원에는 행자가 둘 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에는 큰방 행자로서 종두를 살았고 다음해 봄에 계를 받고 겨울에는 노전 소임을 맡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제가 맡아야 할 소임은 원주였습니다. 원주를 살려면 행자가 많아야 하는데 겨울이 되어도 행자가 들어오질 않아 여간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노전을 살면서 저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무슨 기도냐면, 행자가 7명 들어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무엇보다 부지깽이를 잘 마련해야 했습니다. 견성암에서는 새 중들이 행자가 오기를 발원하면서 부지깽이를 만듭니다. 산에 가서 적당한 나무를 꺾어 부지깽이를 만드는 것에는 엄격한 법식이 있습니다. 우선 부지깽이로 쓸 나무를 베어오는 것은 후원 소임자 중에서도 필히 공양주 행자가 가서 해야만 됩니다. 조왕단에 행자가 오기를 발원하고 목탁과 톱을 가지고 산으로 가서 부지깽이를 구하는데, 뿌리에 가지가 2개 이상 올라온 것 중 굵기가 알맞고 곧게 뻗은 것으로 잘라오는데, 자를 때 목탁을 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계속 외워야 합니다. 나무를 벨 때 다라니가 틀리거나 가지가 중간에 벗어나가면 행자가 왔다가 다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왕단에 돌아올 때까지 자른 나무를 땅에 내려놓아서는 안 됩니다.


조왕단에 자른 나무를 세워두고 기도를 한 후 그 부지깽이를 아궁이에 사용하면서부터 행자가 오는데, 신기하게도 그 부지깽이의 크기와 굵기, 색깔에 따라서 그와 닮은 행자가 옵니다. 그래서 너무 굵거나 가는 가지를 베어오면 안되는데, 굵은 것을 베어오면 너무 억센 행자가 들어오고, 가는 가지를 베어오면 너무 어리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제가 노전 소임에 들어간 첫날 영가 위패가 올라왔습니다. 강복순이라는 영가의 49제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그 분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노전 소임이 끝나기 얼마 전 꿈을 꾸었는데, 저를 출가시켜준 스님이 행자를 데리고 왔다고 밖으로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행자의 이름은 복순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밖으로 나갔는데, 처음에는 스님들을 만나고, 다음엔 크리스트교인들을 만났습니다. 큰길로 나가니까 많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속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스님을 만나지?’하면서 가고 있는데, 스님이 부르셔서 뒤돌아보니, 행자는 보이지 않고 스님 얼굴만 보였습니다.


그 후 노전 소임이 채 끝나기도 전 정월 초하루 날 한 보살님이 출가하려 왔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 출가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절에 머물기로 하여 공양주 소임을 맡아 주었습니다. 그 후 행자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1월 16일 동안거 해제 후 원주소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보통 원주와 별좌, 공양주 2명 채공 2명이 되어야 견성암 후원 살림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데, 그 때 저희는 원주와 별좌, 공양주 1명, 채공 1명에 불과했습니다. 출가하려고 왔던 보살님이 공양주 소임을 혼자 맡았는데, 한 번도 불 지펴서 밥을 해본 적이 없다던 보살님이 저에게 하나하나 물어서 밥을 지었는데, 한 번도 실수 없이 밥을 한결같이 잘 지었습니다.


원주소임을 시작한 후 큰 방 스님 중에서 돌림으로 채공이 나와 3박4일씩 나왔습니다. 두 분 나올 때 행자가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은 행자가 2명도 와서, 소임 들어간 지 15일도 안 돼 행자가 6명이나 왔습니다. 행자가 2명일 때는 삭발을 못한다고 해서 행자 3명이 하루에 삭발을 하는데, ‘중노릇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어른 스님도 계셨습니다. 그래서 3분 째 나오고는 더 이상 큰방 스님 중에서 채공소임이 안 나와도 되었습니다.

공양주가 혼자여서 제가 쌀 씻기와 공양간 설거지를 한 달 도와주었고, 다음에는 공양주 소임 들어갈 행자님을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도와주었습니다. 큰방에 새 스님과 행자가 몇 명 되지 않아 삭발날 큰방 대청소를 후원 행자가 도와야 했습니다. 그래서 내 위의 스님들은 원주스님 대단하다고까지 했습니다.


원주소임 마지막 날 전날 1명의 행자가 더 들어와서 발원한 대로 7명을 채웠습니다. 그런데 도반 스님들은 한 사람이 7명을 발원했기 때문에 더 이상 행자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7명이 채워지면 추가로 6명을 발원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발원을 했습니다. 그 후 저의 원주소임은 끝났지만 행자가 몇 명 더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처님의 가르침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기도의 힘도 부족했지만, 견성암 스님들과 행자님들의 오랜 관행을 저도 몸소 실행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그 원이 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 정말 부처님의 가피력이라 생각하며, 감격스러워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또 올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중스님 여러분!

아무쪼록 “부처님께서는 항상 우리 마음속에 있고, 늘 우리 곁에서 보살펴주시면서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한 순간 한 순간 여여하게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 갑니다. 대중스님들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항상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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