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어설픈 중노릇(동유스님)

운문사 | 2006.04.10 12:41 | 조회 2988

치문반 1년을 보내며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동유입니다. 운문사에 방부 들여 치문반으로서 산지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치문반하면 생각나는 말이 있습니다. “어리버리, 용모가관, 경보선수, 전천후, 잘못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큰부전스님이 자세하게 전달사항을 다 하고는 “치문반 스님들 다 알겠지요”“예”하고 큰소리로 대답해놓고는 반스님들끼리 “뭐라카는 기고, 뭐라고 뭐라고”등등입니다.

제가 운문사에 와서 제일 처음 감동을 받은 것은 대중스님들의 새벽예불 소리와 첫 입선시간 사집반 스님들의 우렁찬 선가귀감 합송 소리였습니다. 가장 심금을 울리고 행복했던 때는 대중스님들과 하루일과를 무사히 마치고 머리 맞대고 누워서 천장에 가로 놓인 아름드리 적송을 바라볼 때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거룩했던 순간은 여법하게 가사장삼 수하고 치문 첫 수업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때 정성스럽게 합장을 하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치문의 첫 책장을 넘기면서부터 천년이상 혹은 수백년 전의 훌륭한 조사스님들과의 만남이 시작된 것입니다.

敍註緇門警訓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홉길의 산을 만듦에 반드시 한 삼태기에서 비롯하고, 천리를 걸어 나아감에 첫걸음에서 비롯한다고 했습니다. 치문은 비록 도에 들어가는 입문서라 하지만 뛰어난 여러 현인들의 각자 수단과 안목을 낸 책이므로 널리 섭렵해 배우지 않으면 그 뜻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총스님의 苦口叮嚀 하신 말씀은 제게 큰 환희로움이었고, 도에 들어가는 뭔가 특별한 것이 씌혀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치문을 마칠 때가 다 되어가지만 제가 기대했던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치문의 글에는 “도에 들어가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서 있는 일상 속에 도는 항상 존재한다. 시주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을 아껴 정법에 의지해 열심히 정진해야한다. 스스로 가벼이 여기지 말고 퇴굴심 내지 말라. 마음을 찾음에 너무 서둘러 쉽게 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반드시 白牛車를 타고 열반의 세계에 노닐게 될 것이다라는 등등을 여러 조사스님들께서 간절하고도 분명하게 후학들에게 일러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옥같은 한 말씀 한 말씀이 막막하기만 했던 저에게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지, 출가사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평소에 중강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뜬구름 잡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기초를 튼튼히 하고 확실한 체계를 세워 나가야지 그 속에서 강한 실천이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며, 한 생각 일으키는 것, 말 한마디 하는 것 마저 이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고 자주 말씀 하시곤 합니다.

거슬러 올라가 운문사에서의 첫봄을 생각해 봅니다. 용모가 참 가관이었습니다. 꽃샘추위에 코를 훌쩍이면서, 가슴에는 빛나는 이름표 하나씩 달고, 후줄거리는 복장에다가 뛰는 것도 아니고 걷는 것도 아닌 종종걸음을 치면서, 후원에 가긴 갔는데 뭘 해야 될지 몰라 설거지통에 손 한번 넣어 보았다가, 그릇 한번 만져보고 가만히 있는 수저통을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기를 반복했지요. 또 상반스님이 “치문반스님”하면 병아리떼처럼 우루루 몰려다니기만 할뿐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치문 네다섯줄 외우는 것도 만만치 않았지요. 더군다나 제 할 일도 옳게 못하면서 곁에 있는 도반스님들을 도와주고 이해해 주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늘 바쁘게만 돌아가는 운문사의 일상이 너무도 벅차고 힘겨웠지만 이 속에서 대중생활을 익히고 부처님 말씀을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훈습되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은 나무가 봄이 되면 싹을 틔우고 때가 되면 꽃망울을 맺고 시절 인연이 도래하면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듯 어설프기만 했던 치문반 1년의 생활은 아홉길의 산을 만드는데 첫 삼태기의 흙과 같으며, 천리길에 도달하는데 첫걸음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서 앞으로 남은 강원생활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대중스님!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정진 여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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