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설산동자의 마음(상해스님)

운문사 | 2006.04.10 10:57 | 조회 2843

설레임과 조심스러움으로 앉고 설 자리를 몰라 허둥대던 첫 철 더위와 지루한 장마 속에 지쳐 서로를 돌아볼 여우가 없었던 여름철. 시간은 가을 속으로 운문사를 들여 놓았고 황금빛 은행잎이 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어느새 겨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상해입니다.

저는 오늘 수업시간에 들은 부처님 전생 이야기 중에서 대중스님들이 잘 아시는 설산동자의 구법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설산동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아득한 과거의 세상에서 보살인행菩薩因行할 때 눈 쌓인 산에서 수행하던 시절의 이름입니다. 설산동자는 오로지 해탈의 도를 구하기 위해서 설산에서 고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제석천은 설산동자의 이와 같은 구도의 뜻을 시험해 보려고 무서운 살인 나찰의 모습으로 변하여 자난 날에 석가모니가 설법한 게송 가운데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이라는 게문을 반만 읊어 주었습니다.


이 게송을 들은 설산동자의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환희로웠으며 등불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만 같았습니다. 설산동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무서운 나찰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지금 게송의 반을 읊은 자가 바로 그대인가?” 라고 하자 그렇다고 나찰이 대답했습니다. 이에 설산동자는 어디에서 그 게문을 들었으며 게송의 나머지 반도 들려주면 평생 나찰의 제자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찰은 오직 사람의 살과 피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설산동자는 그 나머지 게송을 들려주기만 하면 기꺼이 몸을 나찰의 먹이로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나찰은 경우 여덟 자의 게송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냐며 다시 물었습니다.


설산동자는 무상한 이 몸을 버리고 금강신을 얻으려는 것이니 게송의 나머지 반을 들어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나찰은 생멸멸이 적멸위락 生滅滅已 寂滅爲樂이니라 라고 나머지 게문을 읊어주고 설산동자의 몸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설산동자는 그대로 죽으면 세상 사람들이 이 귀중한 진리를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게송을 바위에 써두고 높은 곳에서 나찰이 있는 곳을 향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설산동자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나찰은 다시 제석천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커다란 손으로 설산동자를 받아 땅 위에 고이 내려놓았습니다. 그리하여 제석천을 비롯한 모든 천상 사람들은 설산동자의 발아래 찬미하였습니다.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몸을 던진 설산동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갚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 또한 첫 발심했을 때 부처님의 법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 설산동자와 같았을 것입니다.

고산 원 법사孤山圓法師께서는 宜乎見思齊 하며 當仁不讓 하야 慕雪山之求法 하며 學善財之尋師 하야 名利를 不足動於懷 하고 死生을 不足憂其慮 니 尙功成而事遂 인댄 必自邇而陟遐 니라. (마땅히 어짐을 보고 같아지기를 생각하며 어짐은 응당 양보하지 않아서 설산의 구법을 사모하며 선재의 스승 찾음을 배워서 명예와 이익을 족히 생각에 움직이지 않게 하고 생사에 족히 그 생각에 근심하지 말지니 만약 공을 이루어서 일을 완수하고자 할진댄 반드시 가까운 것으로부터 해서 먼 곳에 나아가야 한다.)


치문의 하루는 숨 가쁘게 돌아가고, 숨 한 번 쉴 때나 발 한 걸음 내딛을 때도 별 생각 없이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타카를 통해 접하게 되는 부처님의 모습에서 오늘 이 자리, 이곳에서의 나의 행동하나, 작은 생각의 흐름까지도 얼마만큼 부처님다운지, 부처님 되려고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부처님 도량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인연에게 감사드리며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이차인연공덕이 유정, 무정에게 빛으로 회향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대중스님, 깊어가는 이 가을 부처님과 함께하는 일에 쉽게 지치지 않는 건강한 수행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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