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수행자의 마장(혜묵스님)

운문사 | 2006.04.10 11:00 | 조회 4877

아침 저녁으로 옷깃에 스며드는 바람이 제법 쌀쌀한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호거산은 하루가 다르게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이 늦가을을 장엄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혜묵입니다. 이 좋은 계절에 수행은 잘 되어 가시는지요?

대중스님들께서는 수행하는 데 어떤 어려운 마장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기도를 하다가 우리는 "무장무애”를 발원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 장애없고 걸릴 것이 없다면 수행하는데 잠시나마 편안하긴 하겠지만, 자신의 영혼의 진화에는 발전이 희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왕삼매론에는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 데 마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모든 마군으로써 수행을 도와주는 벗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구니라 하면 무조건하고 부정적인 관념으로 인식이 되어 있지만, 마음 한 번 돌려 생각하면 도리어 수행의 선지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길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 도가 높으면 도를 방해하려는 마군 또한 많다고 합니다. 이 말의 본질은 도를 닦는 데에는 마장이 필연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마란 무엇일까요? 마魔는 마구니, 악마라고도 하며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구경의 도를 이루지 못하게 방해하는 모든 형태의 장애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부터 불교에서는 수행자의 몸과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마장을 어떻게 물리치고 참 수행자가 되어 구경의 열반과 해탈에 도달하여 성불할 것인가를 부처님을 비롯하여 역대 조사들의 경전과 어록을 통하여 간절하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특히 수행에 장애가 되는 이 마를 2마,3마,4마,8마,10마 등으로 분류하여 설명하였고, 대승경전 《능엄경》에서도 50종류의 변마사라 하여 수행 중에 나타나는 50가지 종류의 마구니를 아주 상세하게 설하고 있습니다. 이는 모두 마음공부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장애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워낙 우리들이 마음이 미묘하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나타나는 마장 또한 미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출가하기 전에 100일기도를 할 때 있었던 마장의 체험을 얘기할까 합니다.

어느 조금만 암자에서 하루에 삼천배씩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처음하는 기도라 과연 하루에 삼천배를 과연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처음 몇 주간은 절을 하기가 무척 힘들고 하기도 싫었지만, 부처님과 저 자신과의 약속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계속 기도를 해 나갔습니다. 기도 2달 반 쯤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여느 때와 똑같이 그 날도 절을 하는데, 문득 불단에 앉아 계시는 부처님께서 한 쪽 눈을 깜박거리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약간은 당황했지만, 다시 마음을 모아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날에도 그런 현상이 계속 되어서, 그것이 무엇인가 궁금해져서 그 절의 주지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기도를 열심히 하니까 불보살님께서 시험하시는 거라며 거기에 신경쓰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고 충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불보살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절로 힘이 나고 신심도 더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거의 90일쯤 되었을 때, 그 절 주지스님과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뛰쳐 나갈 뻔 했는데, 다행히 잘 참고 드디어 100일을 회향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모든 일들이 다 기도를 방해하려는 마장이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기도를 할 때, 특히 거의 끝나갈 무렵이 되면 자존심을 굴복할 만한 마장이 닥친다 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지혜롭게 마의 장애를 극복해서 자기의 원을 더욱 세차게 몰아 부쳐야 되는 것입니다.

마에 대한 기록은 대체로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인 불전이나 초기경전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잡아함경》,《상응부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마 특히 악마에 대해 “오온五蘊인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작용이야말로 악마의 정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악마라고 하면 흔히 연상하기 쉬운 머리에 뿔이 돋고, 칼날같은 송곳니와 머리를 산발한 귀신 등의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가 아니라, 악마란 본래 우리들 몸과 마음이 지어낸 존재에 불과한 것이다 얘깁니다.

본래 청정하고 때 없는 인간의 심성을 그릇되이 흔들어 버리고 그릇되고 삿된 길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뿌리가 바로 악마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존재도 자기 자신과의 마음을 바르게 제어하지 않으면 악마의 후예로 전락하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수행자들은 육체적인 마장인 식욕과 성욕, 수면욕과 탐진치의 삼독의 마구니가 기회를 노리는 것을 잘 조절하여 이겨내지 않고서는 결코 바른 선정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는 마치 불 속에서 뛰쳐 나오는 것과 같이 하고, 천 길 우물 속에 떨어진 사람의 마음과 같이 하고, 알을 품고 있는 닭과 같이 하고, 고양이가 쥐를 잡는 듯이, 지극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불 속에서 뛰쳐 나오는 사람과 머리의 불을 끄는 사람은 무슨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고, 옆을 돌아볼 여가도 없습니다. 또 천 길 우물 속에 떨어진 사람은 오욕락五慾樂도 부모형제도 생각할 겨를이 없으며, 다만 우물 밖으로 나가야 겠다는 오직 '한 생각’뿐인 것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한다면, 감히 제 아무리 천하에 없는 마장이라 하더라도 붙을래야 붙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악마는 느슨한 마음과 풀어진 마음의 틈새로 교묘하게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마음의 주인행세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있어도 삼독과 욕망과 번뇌마 등에 물들어서 그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므로, 욕망 마구니의 노예로 전락해서 중생으로 윤회하는 삶을 면치 못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부처님과 역대조사께서 마구니를 항복받아 거룩한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셨음은 참으로 대단한 일임을 극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악마는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을 집으로 삼고, 우리와 늘 함께 있는 존재임을 살펴, 망령되고 삿된 길을 벗어나 부처님께서 우리 중생을 위해 만들어 놓으신 큰 정법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행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좋은 계절인 만큼 자칫 방일할 수도 있는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혜롭게 제어해서 마구니를 항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서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을 수 있는 불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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