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방편(탄호스님)

운문사 | 2006.04.10 11:05 | 조회 3606

추억을 만들어내는 계절. 찻잔에 차를 내리면 코끝을 자극하는 계절. 붉게 붉게 하늘을 닮아가는 저 느린 걸음 속 햇살은 산마루에 걸터서 얄밉게 내려다 봅니다. 조용한 미소가 낟알처럼 익어가는 계절-가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탄호입니다.

오늘 제가 법문할 내용은 방편方便입니다. 저는 행자 때 이 방편을 많이 사용했는데요, 결코 좋은 방법의 방편이 아닌 그냥 머리굴리기 위한, 말 그대로 '방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TV를 보기 위해 노시님께 어깨 만져드린다고 방편 아닌 방편을 사용해 올라가서 만져드리고 내려온 적도 허다히 많았는데요, 그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얘기하지요. '노시님 어깨도 편하시고, 내 눈도 즐겁고, 매부좋고, 아우좋고!’행자 땐 참 철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물론이지만요.)

《초발심자경문》을 배우다 보면 '개차법開遮法’이란 말이 나오는데요. 그 땐 방편이란 말보다 '개차법’이라는 말을 많이 남용해 쓰곤 했습니다. 그 단어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쓰여져야 하는지 알면서도, 엉뚱한 해석으로 내가 유리한 쪽이라면 개차법을 사용한다고 떠들어 대었던 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목적은 나빴어도 결과는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의 방편이라면 나중엔 꼭 후회하게 되더라구요?


방편의 자전적 의미를 각각 살펴보면, 방方은 네모, 방위, 방향, 방법, 술법, 바르다, 떳떳하다, 견주다, 바야흐로, 처방, 배 나란히 세울, 향할, 거스를, 나눌, 가질, 길, 이제 등의 뜻을, 이에 대해 편便은 편리할, 아첨할, 쉴, 소식, 편의, 읽을, 말잘할. 뚱뚱할 등,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도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실제생활에서는 이런 좋은 의미들이 잘 활용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는 주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이 단어는, 그러나 불교집안으로 들어오면 '사람을 인도하는 방법’이라 하여, 매우 필요로 되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갈라진 불상 틈새로 난 곰팡이를 두고 '삼천년 만에 나타난다는 우담발화가 피었다고 각 종 언론매체에서 떠들썩했었지요. 하지만 이 우담발화는 며칠도 채 못 가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방편이었음’이라고 다시 다른 기사로 내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예.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경허 큰스님께서 쓰셨던 기발하기 그지없는 방편얘기. 어느 날 스승과 제자 두 스님이 무거운 바랑을 가득 짊어지고 산 너머 저 쪽 꼭대기 암자를 향해 돌아가고 있는 시간, 땀은 삐질삐질, 온 몸은 천근만근,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제자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걸망이 너무 무거우니 스님 좀 쉬어가자고. 묵묵부답만 계속 하시던 스승님, 뒤질새라 계속 투덜거리는 제자에게 한 번 고개를 끄덕해 보이시더니, 저 먼 발치에서 물동이를 이고 오는 한 처녀에게 성큼 다가섰습니다. 그리고는 잽싸게 그 처녀의 귀를 잡고 '뽀뽀'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녀는 물론 괴성을 지르고, 이 장면을 본 마을 장정들은 몽둥이를 들고 이 '엽기(?)스님’을 잡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스승과 제자, 왜 그랬냐 어쨌냐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지 마는지도 모르게 뛰어 단숨에 그 높던 산을 훌쩍 넘어 어느덧 산 모퉁이에 이르르는 순간, 헐떡대는 숨을 겨우 고르느라 정신이 없는 제자를 향해 지긋이 웃으며 던지시는 큰스님의 일침 한 마디! " 지금도 무거우냐 ? ” " ..?.. 아니요오 ?!” 요즘은 이런 행동을 엽기행각이라고 하지요? 아무리 목적 자체는 제자의 근기를 잘 다스리기 위한 훌륭한 것이었다지만, 사실 그 처녀는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대중웃음)

방편! 처음도 중간도 끝도 모두 좋은 것이 되려면, 그에 따르는 목적, 수단, 결과 또한 모두 좋은 의미로 쓰여져야 겠지요. 방편은 마치 어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데 '지름길’같은 역할을 한다 생각합니다. 바른 목적으로, 그리고 바른 결과가 나오도록 한다면, 결코 이 방편이란 말이 그렇게 나쁜 의미로 많이 쓰여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은 의미의 방편, 꼭 성불成佛하기 위한 방편, 우리 수행자들은 이런 큰 포부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방편을 찾아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늦가을입니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와서야 비로소 향기를 머금은 찻잎이 피어나듯, 혹독한 자기반성과 적극적인 눈뜸 없이는 자기 삶의 길을 환히 비춰 줄 방편을 만날 순 없을 듯 합니다. 자기만의 방편을 찾아 실천하는 데 힘을 써서 굳은 신심으로 살아가도록 서로서로가 노력해야 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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