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행복은 내 마음에서(혜왕스님)

운문사 | 2006.04.10 11:08 | 조회 2941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혜왕입니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지요. 저는 오늘 얼마 전에 읽은 <행복의 발견>이라는 책 가운데에 “생각의 실험”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를 할 텐데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컵이 있습니다. 이 컵으로 실험을 해 봅시다. 실험이라고는 하지만 머릿속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한 개에 십 만원 정도 하는 값비싼 컵을 대 여섯개 준비해 주십시오. 그 가운데 하나는 정랑으로 가지고 가서 소변을 컵에 담겠습니다. 가능하면 대변도 넣어 주십시오. 그리고 그대로 4. 5일간 내버려 두십시오. 지저분한 이야기라고 얼굴을 찌푸리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컵은 깨끗해졌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앞에 계시는 치문반 묘준스님! 그 컵으로 차나 쥬스를 마시지 않겠습니까? 더러운 것을 담은 컵인 줄 안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시지 않을 것입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드시 마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도반 스님들을 초대하겠습니다. 네 다섯 명의 도반 스님들을 초대해서 그 가운데 가장 싫은 사람에게 그 더러운 컵을 사용하게 하겠습니다.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깨끗한 컵으로 차를 마시게 하구요.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그 더러운 컵을 쓰게 된 친구가 말할 것입니다. “이 컵 꽤 좋아 보이는데요?” “얼마나 해요?” “뭐? 컵 하나에 십 만 원이라구요?” “그럼 그렇지, 그렇게 좋은 컵으로 마시니까 차 맛도 더 좋은 걸.”


이것이 “공”입니다. 만약 이 컵이 공한 것이 아니라면 컵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사람에게 똑같이 더럽게 보여 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컵은 나에게는 더러운 컵으로 보이지만 도반에게는 깨끗하고 값비싼 훌륭한 컵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컵은 공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럽다’‘깨끗하다’는 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그것은 내 마음 속에 있습니다. 컵은 공한 것인데 내 마음이 그것을 ‘더럽다’ 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반스님의 마음은 그것을 값비싸고 멋진 컵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한 존재를 우리의 마음이 여러 가지로 차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차별현상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소변이나 대변이 담겨졌던 컵은 더러워요. 아무리 씻어내어도 깨끗해지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분 자신의 손을 싹 뚝 잘라내는 편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손에도 때때로 대변이나 소변이 묻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손은 씻으면 깨끗해진다고 여기면서도 대변이 담겨졌던 컵은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집착덩어리일 뿐입니다. 오히려 손보다 더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이 매끈매끈한 컵일지도 모릅니다. 그에 비해 손은 손톱 사이에 대변이 조금이라도 끼게 되면 아무리 씻어내도 쉽게 씻겨 나가지 않으니까요. 이것이 “불구부정不垢不淨”의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중스님!

늘 생활하면서 등한히 여기지 말고 어떤 사물을 보면서도 영원히 더러운 것도 없고,

영원히 깨끗한 것도 없는 진리를 마음으로 관해야겠습니다. 그렇게 자꾸 하다 보면 곱고 미운 것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며, 궁극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본질을 찾아내어 영원한 행복에 이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치우침 없는 견해로 사물과 경계의 실상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지혜를 쌓아갑시다.

행복하십시요.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