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인욕은 고행이 아니다 (거오스님)

운문사 | 2006.04.10 11:10 | 조회 3033

인욕은 고행이 아니다. 그러나 인욕보다 더한 고행은 없다. 당신은 참을 만큼 참았다.

당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훨씬 더 잘 견뎌주었다. 더 이상은 참지 않아도 좋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더 이상은 나도 견딜 수 없고 이제는 참지 않아도 누구도 날 비난하지 못한다. 그래...당신은 자타가 인정할 만큼 완벽하게 참아냈다. 그럴 즈음 당신에게 그래도 한번만 더 참아 달라는 목소리가 있다. 당신은 물론 외면해도 좋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처음처럼 죽을 힘을 다해 한번 더 참을 맘을 일으킨다면 우리는 당신의 그러한 행동을 “인욕” 이라 부를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거오입니다.

지난 봄, 문화부에서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강원생활 중 가장 필요한 육바라밀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라는 질문에서 56.3 %를 차지하는 스님들이 "인욕忍辱"이라고 답하였습니다. 저 역시 그 질문을 대하고선 아무런 주저도 없이‘인욕이 최고다!’ 하며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몇 맘 맞는 사람과 조촐하게 사는 토굴생활에 비해 불특정 다수가 모여 사는 대중생활에서는 당연히 참아야 할 것, 받아들여야 할 것, 때로는 놓아버려야 할 것들, 즉 우리를 끝없이 인욕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보리행경』에는 “화내는 것보다 큰 죄악이 없고, 인욕보다 어려운 고행이 없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인욕바라밀을 닦아야 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법화경』에서도 “법사는 여래의 인욕의 옷을 입고 사람들을 위해 법을 설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인욕의 갑옷을 견고히 입어야만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무서운 분노를 막아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인욕은 단순히 고통을 억지로 참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참고, 용서하며 낮춤을 실천하는 중요한 수행방법입니다. 고통스런 인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른 인욕, 즉 중도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고행일 뿐 우리의 수행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인욕이란 바른 견해와 논리적인 사고에 의해 스스로가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인욕은 “즐거운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울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참아냈다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참아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 재세 시 “인욕 수행”의 표본이 될만한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 제자 중 부루나 존자가 한 날 “스나”라는 나라에 가서 포교를 하겠다고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기에 부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부루나여, 스나 사람들은 포악하다는데, 그들이 욕을 하고 창피를 주면 어떻게 하려는가.”

“세존이시여, 그 정도라면 저는 저를 손으로 치지 않는 그들을 오히려 어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만일 그들이 손으로 그대를 친다면?”

“네, 그때는 그들이 저를 치는데 채찍이나 곤장을 쓰지 않으니 어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만일 채찍이나 곤장으로 친다면?”

“네, 그때는 그들이 칼을 쓰지 않으니 어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칼로써 너를 괴롭히고 생명을 앗아 간다면?”

“세존이시여, 당신의 제자 중에는 육체의 무게를 고민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한 자도 있었습니다. 스나 사람들이 저를 칼로 치면 그 때 저는 '내가 복이 있어 저들이 내 육체의 괴로움을 빨리 없애주는구나' 라고 생각 하고 그들을 어질다 하겠습니다.”

“참으로 착하고 훌륭하구나, 부루나여. 그대가 이처럼 모욕과 고통을 참는 힘이 있으니 그대는 아무 걱정 말고 스나로 가라.”

부처님께서는 부루나의 이와 같은 말을 듣고 그의 포교여행을 허락하셨습니다. 부루나의 이렇듯 철저한 인욕 앞에서는 열리지 않을 어떠한 문도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시종일관 바르게 인욕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럴 용기를 갖고 계시다면 우리를 막을 수 있는 문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가끔 저희 스님께서도 제게 어려운 숙제를 내십니다. “니가 지금 하고 있거나 해야만 하는 것 중에 가장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라. 그리고 제일 먼저 그 일부터 해라. 그 일이 더 이상 싫지도 않고 피하고 싶지도 않을 때까지 계속.” 그러면 저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숨통을 죄면서 날 쫓아다니는 그것, 피하고 싶고 하기 싫은 그것에 관해 그리고 그것이 정해지면 우선은 시작해 봅니다.

제가 운문사에 오게 된 것도 스님께서 내신 숙제의 일부분입니다. 강원에 온다는 것!

제가 피하고 싶은 문이었고 꼭 가야만 한다 해도 많은 대중이 있는 거대운문사는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희 스님은 평생을 선방만 다니셨기에 강원이 어떠한 곳인지도 사실 잘 모르실 뿐더러 그다지 관심도 없으십니다. 수계 후 인사드리러 갔을 때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한 마디 하셨습니다. “요즘에는 강원에 꼭 가야 한다더라. 강원은 운문사가 좋단다.” 스님의 이 한 마디에 저는 강원을 그것도 운문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한 가지 더 “강원가면 재밌게 지내다 와라.”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대중생활 잘하라는 것도 아니고 재밌게 지내다 오라니... 그 때 저는 스님이 주신 숙제를 받아들였고 아직도 그 숙제는 풀고 있는 중입니다. 어쩌면 제가 강원생활이 너무나 즐겁고 그래서 타성에 젖을 때 쯤 이렇게 말씀 하실 지도 모릅니다. “강원 꼭 졸업 안 해도 된다. 요즘은 기초선원도 잘 되어있단다.”라고 말입니다.

대중스님, 인욕은 말처럼 쉬운 것도 아니지만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왜 그것을 해야 하는 지? 참아야 하는지? 받아 들여야 하는지? 를 세심하게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 결과가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 것인지를 침착하게 생각해 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스스로를 너무 방일하게 두지도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나 질책하여 내몰지도 마십시오. 모든 것은 다 잘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계시는 대중스님들께서는 시작하셨기에 반은 이루어진 셈이고 혹 아직 시작하지 못하셨더라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고, 이미 오래 전부터 하시고 계셨다면 머잖아 이룰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이 껴입고 따뜻한 곳을 찾아 더 깊이 파고들어 봐도 겨울은 역시 춥기 마련입니다.

추운겨울을 이겨낼 최고의 방법! 그것은 겨울이 주는 추위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계율을 지키고 고행에 힘쓰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투철한 인내는 그보다 더욱 값지고, 어떤 재난, 어떤 사건도 그것을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 '힘 있는 大人'이라고 불립니다.

대중스님!

즐겁게 인욕수행하시고 하루하루 행복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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