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신심충만한 수행(천진스님)

운문사 | 2006.04.10 11:12 | 조회 3523

안녕하십니까? 사교반 천진입니다.

이제 차례법문이 몇 명 남지 않았고 분위기도 제법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역시나 시계부터 보시는 분들이 많군요. 지난 번 차례법문 땐 괜히 긴장하고 덩달아 떨었을 텐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사리암 소임이었습니다. 사리암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얘기를 나누게 되는데요, 물론 여기서 생활하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역시 저는 신심 가득한 이들을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굳이 이러저러한 이유를 설명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되니까 힘도 들지 않고, 또 그들과 함께 있으면 내 삶이 스스로 견고해 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득 그들에 비추어 나를 보게 될 때입니다. 부끄러움은 물론이고,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는가’하는 공간적 존재의 이유가 불분명해 지면 답답하고 혼란스러워 집니다. 흔히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들을 수 있는 ‘신심 떨어진다’ ‘신심 충만하다’는 말.연료가 바닥나면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우리는 신심 떨어지는 것을 염려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신심의 수치를 근기로 삼아 수행하시는 여러분과 원효스님의 말씀을 들어 신심과, 신심을 충만하게 뒷받침해 주는 수행법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 들으셨던 ‘믿습니까?’라는 법문의 물음에 대해 ‘믿습니다!’라고 자신있게 답하셨습니까? 그렇게 답하실 수 있었던 믿음. 그 믿음의 대상은 네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진여와 불법승 삼보입니다. 상주불변의 진여, ‘일체중생 개유불성’의 진리를 그대로 믿습니다. 불!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과 자비를 믿어 항상 공경예배하고 의지하여 닮고자 합니다. 법!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 삶의 지표로 삼아서 그대로 따라 수행함에 무릇 섣부른 결정으로 인한 오류를 할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이익될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 승! 이러한 믿음으로 사문들이 바르게 수행하여 자리와 이타를 실천해 오셨고, 또 여기 계시는 여러분 또한, 그렇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신심에 대하여 얘기했는데요,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신심있다, 없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신심이 없다’라고 한다면 지금 이 곳에 있지도 않을 것이고, 그런 사람에겐 신심이라는 말로 평가할 그 무엇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린 0.1%의 적은 신심이라도 있기 때문에 신심에 대한 걱정을 하는 걱정을 듣는 것입니다. 또 우리들은 각자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보이기에 단순히 같은데 별로 ‘신심있다’라고만 하기엔 좀 건성적이다라는 것이 저의 소견입니다.


다음은 신심을 떨어지지 않게 하고, 또 끌어 올려주는 수행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입니다. 익히 들었고, 각자 나름대로의 수행을 하고 계시겠지만, 원효스님은 다섯으로 문을 나누셨습니다. 첫 번째, 보시의 시문施門. 도반이 내 것 중에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 있으면 힘 닿는데로 베풀어서 나는 땅보다도 두껍다는 간탐심을 버리고 도반에겐 환희를 주고, 실로 제 주변에는 아픈 이의 곁에 항상해서 약왕보살이라 불리는 스님도 있고, 또 예불 모실 때 간혹 창불하는 스님에 따라 대중이 12화음으로 나누어질 때가 있는데요, 법당에서 제 뒤에 있는 스님은 항상 그 첫 음을 준비하고 있다가 16분의 1박자 먼저 소리를 내어 줍니다. 얼마 전 반 스님들에게 아주 적절한 독송용 금강경을 공양해 준 스님 역시 이 시문에 있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 계문戒文. 여래의 금계를 지키며, 작은 계라도 가벼이 하지 않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면 나의 파계행을 보고 비방하는 다른 중생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대중생활에 있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소문의 주인공이 되거나, 억울하게 휘말리는 일이 생길 수 있는데요, 발설자를 찾지 말고 보복 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 저희 스님은 옆 사람 꼴 잘 봐 주는 것도 수행이라 하셨습니다. 바로 인욕의 인문忍門입니다.


네 번째는 이렇게 수행하는 중에 망령된 마음과 악업으로 장애가 생길 때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듯 정근하여 예배하고 참회하기를 쉬지 않는 정진의 진문進門. 그리고 모든 경계상을 그치게 하는 사마타와 비파사나의 지관문이 그 다섯 번 째입니다.


신심으로써 수행하는 자는 항상 시방의 불보살이 호념해서 장애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불법을 비방하게 될 중죄를 비켜가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추승구족秋僧九足! 승려가 발이 아홉 개라도 모자랄 만큼 가을에 바쁘다는 말인데요, 바빴던 가을도 지나고, 이제 ‘익숙치않은’ 여유도 가져볼 수 있는 겨울철이 시작되었습니다. 바쁠 때 깨어 있기보다 한가로울 때 깨어 있는 것이 더욱 어려운 듯 합니다. 혹 여러분이 그런 때라면 한 번 신ㄴ심을 체크해 보시고 수행의 탄력으로 이 겨울 따뜻하게 나는 건 어떨까 해서 부족하나마 말씀드렸습니다.


진여와 불법승 삼보께 귀의합니다.

성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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