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이 찬상이 내게 오기까지 (범효스님)

운문사 | 2006.04.10 11:18 | 조회 3190

“대중스님 ! 오늘 하루도 정말 근념하셨습니다.”

라는 말로 짧은 법문을 시작하는 사교반 범효입니다. 어릴 때는 밥을 남기거나 흘리는 내게 “이 쌀 한 톨 키우는데 농부 아저씨가 얼마나 애쓰는지 모르니?” 하며 꾸중하시는 부모님. 출가해서는 “이 한 톨에 시주의 은혜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니?” 하고 걱정해 주시는 어른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대중에 와서는 법공양 때 외우는 “계공다소양피래처 촌기덕행전결응공.” 으로 시작하는 오관게五觀偈에서는 하나의 음식이 그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오기까지의 여러 사람의 노고와 공양하는 마음가짐, 수행하는데 약으로 삼을 것을 당부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특히 운문사의 청풍료, 금당같은 대방의 공양자리에선 한 찬상이 차려져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본다면 참으로 그 뜻이 깊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운문사 대방에서의 공양자리엔 찬상공양의 경우, 각 반 당 7개~9개, 발우공양 경우 상판스님 17개, 금당스님 19개, 하판스님 12개의 찬상이 차려집니다. 직사각형의 조그만 상 위엔 새반찬, 밑반찬, 김치가 놓여있고, 돌리는 반찬과 국, 밥, 숭늉으로 공양이 차려집니다.

하루에 3번씩 규칙적으로 일정한 시간에 이렇게 차려지기까지 별좌스님, 후원 소임자 스님, 부전스님, 종두스님 등 대중 누구 하나의 손길이 안 간 것은 없습니다. 후원의 원주별좌 스님은 재무스님이 장 봐 주신 것과 사집반 스님들이 농사지은 걸로 반찬을 만들고, 상채공 스님은 국을, 상공양주 스님은 공양을 짓습니다. 후원의 여러 먹거리는 사교반 스님들이 담당하며 종각 밖의 밭에선 사집반 스님들이 도감스님의 지휘 아래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으며, 김치 한 통을 담그는데도 사교반과 사집반 스님들의 애씀과 함께, 항상 대중의 공양을 나르고 뒷 설겆이를 해 주는 치문반 스님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성껏 차려진 공양자리는 온 대중의 노고가 담겨있기에 매우 감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뒷받침되는 시주의 은혜는 더욱 잊어선 안 되겠지요? 출가 전에는 한 때 부끄럽게도 편식을 한 적도 있고 음식의 양과 질에 대한 시비도 해 보았는데요. 삭발 염의하여 강원에 와, 치문반 땐 종두를, 사집반 땐 농사를, 사교반 땐 비록 소임이지만 집에서 끓이는 조그만 냄비가 아닌 커다란 무쇠 솥에 250명분의 국도 끓이고 불도 때보고 밥도 지어보고 여러 먹거리 꺼리도 해 보니, 그 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어 음식에 대해서 짜니, 싱겁니, 되니 하고 불만을 토했던 과거의 저에 대해서 참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대중스님, 이 찬상이 내게 오기까지 온 대중의 공과 노고, 시주의 은혜를 생각한다면 늘 감사히 먹는 마음과 함께 평소 열심히 간경하고 울력하고 기도 정진하는 수행자의 진정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초까지 다투는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운문사 ! 이 한 찬상이 차려지기까지 그리고 그 한 찬상의 힘으로 열심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까지, 모든 소임의 경중을 떠나 그 날 그 날 각기 맡은 바를 열심히 사는 대중스님들.


오늘 하루도 정말 “근념勤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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