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육화경 이야기(지현스님)

운문사 | 2006.04.10 12:05 | 조회 3166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지현입니다.

제가 운문사에 오게 된 것은, 어떤 이유보다도 “큰 대중”으로 가야 원만한 수행자로서 기틀을 갖추게 된다시던 어른스님의 적극적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운문사에 들어와 저를 처음 맞이한 것은‘대중에 수순하라’‘대중 속에서는 자기 생각을 내지 말라’‘운문사에 왔으면 운문사를 따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동안 잠재해 있던 업식이 모두 발현이나 되는 듯 몸으로, 생각으로, 말로 부딪치고, 보이지 않는 기운(파장)까지 치열하게 맞부딪치면서 일년 남짓 보내고 나니까, 이제야 온갖 부딪침이 저 자신을 우뚝 서게 하는 버팀목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언젠가 육화당六和堂 빨래터를 찾다가 갸우뚱 한 적이 있었는데요. 아무리 봐도 화경당和敬堂 빨래터이지 육화당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한 쪽은 육화당 다른 한 쪽은 화경당. 한 지붕에 두 건물이라서 두 가지 이름인가 했는데, 나중에 육화六和가 곧 육화경의 의미인 줄 알고서 실소했습니다. 어른스님, 화엄반스님, 사교반, 사집반, 치문반 스님, 심지어 행자님까지 모두 함께 거처하는 중심 건물에 육화와 화경이란 당호를 붙ㅌ이신 어른스님의 안목과 그 마음이 읽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육화경은 깨달음을 구하여 깨끗한 행을 닦는 자가 서로 사이좋게 공경하며 지내는 여섯 종류인데요,

그 하나는 계율로 화합해서 함께 수행하며 (계화동수戒和同修)

몸으로 화합해서 함께 거처하며 (신화동주身和同住)

입으로 화합해서 다툼이 없게 하며 (구화무쟁口和無諍)

뜻으로 화합해서 함께 기뻐하며 (의화동열意和同悅)

견해로 화합해서 함께 이해하며 (견화동해見和同解)

이익으로 화합해서 똑같이 나눈다. (이화동균利和同均) 입니다.


대승大乘에서는 보살이 중생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으로 화동하여 덕과 지혜를 베풀고 중생들이 법을 공경하도록 하는 6종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대중이 화합하고 공경하는 법으로써, 참으로 다양한 성품性品과 근기根機들이 모여 대중을 이루었기 때문에 신구의 삼업으로 화합하고 계율과 공空 등의 견해와 이익을 같이 해서 대중이 화합하고 경애敬愛를 유지하는 여섯 방법인 것입니다. 대중에 수순하고 화합한는 일은 자기 생각을 내지 않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흔히 ‘이것이 옳다’‘저것은 그르다’‘이게 좋다’‘저것은 싫다’ 끊임없이 판단하는 습관을 제거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사실 대중에서 요구하는 바가 내 생각과 다를 지라도 묵묵하게 따라주고 가타부타를 따지지 안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보통은 아상我相으로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사윤회를 하게 된 근본도 다름 아니라 무명으로 인한 집착 때문이며 이 집착 중에서도 가장 끊기 어려운 것이 나라는 상이라 했습니다. 대중 속에서도 가장 불거져 문제시 되는 것이 바로 이 '아상'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제행이 무상하여 제법이 무아인 이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무명업식에 쌓여 있기 때문에 허망한 아상 위에 온갖 욕구와 생각과 행위를 일으켜 나와 남을 다투는 것이겠지요. 중생의 근기가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육화경법六和敬法을 설하시어 대중 속에서 화합和合하도록 깨우쳐 주신 것이라 여겨 집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자면, 독경과 염불을 통해 구업을 맑히고 다툼을 없앤 구화무쟁口和無諍과, 함께 기뻐하는 의화동열意和同悅과,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계화동수戒和同修와, 사물을 바로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견화동해見和同解를 이루므로써 아상과 인상人相을 없앨 수 있는 힘을 쌓게 되면 결국 자아自我가 空한 이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는 “온갖 대원을 칭찬하는 것은 불보의 시를, 인연문을 분별해서 연설하는 것은 법보의 씨를, 육화경법을 권하여 닦게 하는 것은 승보의 씨를 길게 이어지게 함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스스로에게 깨어 있어야 할 수행자입니다. 대중 속에서는 항상 남보다는 자신을 먼저 돌이켜 보고, 육화경을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대중스님 ! 운문사의 웅장한 법당에서 간절하게 오직 일심으로 ‘지심귀명례’를 하고 계십니까? 몸과 입과 뜻이 하나를 이룬 염불 속에서 환희심을 느끼고 계십니까? 어떤 망념妄念도 끼어들지 못하도록 자신의 독경속에 몰입하고 계십니까? 대중스님과 함게 정성을 다한 울력 속에서 자신의 업장이 녹아지는 소리를 듣고 계십니까?


그러시다면, 대중스님 모두 육화경에 손색없는 참 수행자이십니다. 이것이 그대로 법희선열法喜禪悅로 승화되면 운문 대중스님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불국토를 장엄하는 일일 것입니다. 봄볕 따스한 날들입니다. 독경과 염불 속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나날 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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