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열심히 삽시다(무념스님)

운문사 | 2006.03.20 11:21 | 조회 3312

안녕하세요? 사교반 무염입니다.

이 시간은 4대가 함께 사는 저희 집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절 집에서는 보통 행자가 제일 바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 집은 법납이 많은 순서대로 바쁩니다.


새벽 3시.

도량석 목탁소리와 함께 한 켠의 작은 방에 불이 켜지는 것을 시작으로 그 안에 계신 90에 가까운 상노스님께서 아주 분주하게 씻고 정리하고 나서 단정히 앉으십니다. 아미타불 10만 독을 하려면 늦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말은 '용건만 간단히'인 것은 물론이고, 간식 갖다드리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바빠 죽겠는데 뭘 자꾸 먹으라는 거냐."고 한바탕 호통을 치시곤 합니다.


큰방에서는 또 다른 노스님께서 좌선을 하고 계십니다.

안 주무신다고 걱정하는 상좌 때문에 이부자리는 늘 하지만 눕는 건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많이 편찮으시기 때문에 쉬어야 한다고 옆에서 젊은 스님들이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나의 이 간절한 마음을 모른다."고 말입니다.

저의 손을 꼭 잡고 또 말씀하시곤 합니다. 전에는 남들과 같이 이렇게 생각하셨답니다.

행자 때는 열심히 일 배우고 염불 외우게 하고, 강원에 가서는 열심히 경(經)보고 대중과 무리 없이 화합하게 하고, 졸업하면 열심히, 그리고 간절하게 화두를 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십니다. 사람에 따라선 처음 출가할 때 그 마음 그대로 화두를 들게 하는 건데··· 하시며 말끝을 흐리십니다.

누구나 여여(如如)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이 말 저 말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겠지만, 당신의 경험으로 볼 때, 첫 발심 했을 때와 바로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둔 때가 가장 절절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노스님의 외형은 많이 상하셨지만 그 살아있는 눈동자를 대중스님들께 보여 드릴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번엔 작은 노스님, 즉 노스님의 사제(師弟)스님입니다. 이 분은 평생 글을 볼 줄 모르는 것이 한이셨던 분입니다. 젊어서 좀 배우시지 그랬냐니까 그 때는 글 배우는 것보다 화두를 드는 것이 더 급했었답니다. 그런데 몇 해 전 어느 날, 갑자기 한글을 배우겠다는 것도 아니고 붓글씨를 배우겠다는 겁니다. 한글도 모르는데 어떻게 서예를 배우냐고 조심스레 말렸더니 더 늦기 전에 당신의 눈과 손으로 경전도 보고 사경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지금은 작품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잘 쓰고 읽으십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분의 노스님과 저희 절의 대중을 외호하시는 스님이 계십니다. 그 분의 도반스님들은 입모아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스님만큼은 선방에서 죽을 줄 알았다."고 말입니다. 편찮으신 은사스님과 버거울 정도로 큰 도량과 만만치 않은 살림살이를 하면서도 행여나 시간이 난다치면 좌복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오히려 여유 있어 보일 때 제 가슴이 뭉클해지곤 합니다. 굉장히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방안 전체를 꽉 채우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6년 전 처음 뵈었을 때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으시고 제가 살면서 더욱더 존경하게 된 분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성불하려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된다는데 스님은 무슨 성인이시기에 이렇게 힘든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가장 인간적으로 사시느냐'고 여쭤보았습니다. 스님은 이 도량을 떠나서 일념으로 화두만 들 수 있다면 당신도 또한 뒤도 보지 않고 공부만 했을 거랍니다. 그러나 선방에서 하루 종일 편찮으신 은사스님 걱정하면서 번뇌에 시달리느니 10분이라도 제대로 화두를 들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대중스님!

각자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는 강원에서 힘들고 지칠 때면 집 생각을 하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곤 합니다. 집에 계시는 어른스님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덥고 일 많은 여름철입니다. 지치고 힘들겠지만 '평상심이 도'란 말을 되새기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삽시다.

부처님 으뜸 제자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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