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인욕(현서스님)

운문사 | 2006.03.20 12:28 | 조회 2740

雪後始知松柏操 하고,

事難方知丈夫心 이니라.


    눈이 내린 후에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기백을 알고

    일이 어려운 때라야

    장부의 마음을 알 수 있느니라.


요즈음 같이 장마비가 계속되어 축축하고 후덥지근한 이 때 눈이 수북수북 쌓인 소나무를 생각해 보심은 어떻겠습니까? 시원하시지 않습니까?


안녕하십니까? 치문반 현서입니다.

제가 운문사에 합격해서 입학하러 올 때 스님께서 걱정스런 마음으로 부탁하신 말씀인데 차례법문이라는 자리를 빌어서 얘기해 볼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은사스님께서 하신 부탁의 말씀이십니다. 제가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인욕忍辱입니다. 그냥 참는 것을 인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은사스님의 말씀은 그 단계가 아닌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 그침이 마를 때까지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누가 만약에 발로 차면은 통째로 구르라고 하십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원망하는 마음도 가지지 말고 그냥 그대로 구르랍니다. 절대로 같이 발로 차거나 대들지 말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말고 그대로 구르랍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거의 왜 차는 것이야 하면서 달려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인과의 법칙에 따라 내가 달려들면 또 다른 인과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전생에 내가 너를 꽤나 못살게 굴었나 보다 하면서 참회를 하면서 구르랍니다. 그러면 모든 인과는 끝난다고 말입니다. 우리의 중생심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우리는 노력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저의 체험담을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제가 행자로 들어왔을 때 저의 절에는 노스님을 모시고, 은사스님과 노스님 시봉하면서 절일을 도와주는 보살님과 사형님 두 분이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지나 사형님들은 선방으로 가셨고, 은사스님을 모시고 살게 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살님이었습니다. 무슨 인과인지 모르지만 이 보살님이 나를 벌레 보듯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성격도 참 이상하다 하면서 그냥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심해졌고,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하고 아무리 같이 일을 해도 수고했단 말 한 마디 안 하고 내 옆에 있는 물건도 다른 사람을 시켜서 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보살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저는 행자기간을 지나 사미니계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보살은 변하지 않았고 나를 대하는 것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과일을 먹을 때도 나를 옆에 놓고 포크에 찍어서 다른 사람에게 먹여주고, 그래도 혹시 필요한 것이 있나 제가 물어보면 획하고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3년쯤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살았습니다.

저는 은사스님께 항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을 무시하는 저런 보살이 절에 있어서 무슨 이득이겠느냐고 하면서 하지만 은사스님은 저를 달래셨습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 하지만 우린 수행자니까, 참아라 ! 그러다 보면 인과는 끝나게 되어 있으니까. 네가 그것을 힘들어하지 않고 인과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인다면, 세월이 지나고 나면 아마 자네에게 좋은 스승이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을 것이니.” 하지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았고, 은사스님까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꼭 그 보살을 감싸고도는 것 같고, 내가 왕따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또 일년 정도가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나아지지는 않았고, 이제는 내가 다른 보살과 이야기를 하면 그 보살까지 미워하는 거였어요. 저는 은사스님께 또 항의를 했습니다. 이제는 은사스님까지 “자네가 중이라는 아상이 높아서 그런 것 아니냐” 고 도리어 걱정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가 중이니까 저 꼴을 보고 살지, 중이 아니면 저런 꼴을 내가 왜 보고 사느냐”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은사스님은 너무 한심하셨던지, 한참을 아무런 말씀도 않으셨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음을 가다듬으셨는지, 그 때서야 “자네와 그 보살님은 인연이 좋은 인연이 아닌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그래도 수행자는 속인들과는 뭔가 달라야 될 것 아니냐. 그래도 참아줘서 고맙다. 자네가 한 번 참회를 해 보도록 하게나.”

저는 참회를 시작했습니다. 법당에서 기도 끝에 그 보살이 있는 곳을 향해서 3배씩 절을 했습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세세생생 내가 지은 모든 죄업을 참회합니다. 그렇게 참회하기 시작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그 보살을 바로 볼 수 있었고, 무엇인지 모르지만 좀 자신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의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왜 괴로워하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괴로워할까 나를 괴롭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나를 괴롭히는 것은 보살이 아니고, 바로 나였습니다. 내가 만약 그 보살을 보지 않았다면, 그 보살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던 어떻게 행동하던지 내가 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나는 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살을 바라본 것도 나였고, 그 보살을 생각하는 것도 나였고,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였고,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였습니다. 출가 수행자로써 나를 살피지 않고 산 대가로 저는 5년을 지옥에서 살았습니다. 내가 만든 지옥에 말입니다.

저는 그 뒤부터 모든 것에 무심해 졌고, 그 보살님과도 잘 지냈으며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그리고 은사스님께서 그 분이 왜 나에게 좋은 스승이라고 말씀하셨는지도 알았습니다. 그 덕분에 운문사라는 대강원에 와서도 마음 상하지 않고 웃으면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요즘 같은 장마철 무덥고 짜증나기 쉬운 계절입니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넘기면서 다같이 인욕 정진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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