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정토왕생에의 염원(성은스님)

운문사 | 2006.03.20 12:34 | 조회 2840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성은입니다.

대중스님!

지금 여기는 서기 2003년 7월 장마와 함께 무더운 여름날의 운문사가 아니라 천 년하고도 30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신비로운 불국토로 장엄된 신라의 땅입니다. 문무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때 광덕과 엄장이라는 이름의 두 사문이 있었습니다. 평소 사이가 좋아 밤낮으로 약속하기를 “먼저 극락으로 가는 자는 모름지기 알리자.” 라고 하며 염불 정진했습니다.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에 은거하여 짚신 삼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서 처자를 데리고 살았으며 엄장은 남산에 암자를 짓고 밭을 갈며 살았습니다. 하루는 해 그림자가 붉은 빛을 띠고 소나무 그늘에 어둠이 깔릴 무렵에 엄장의 창 밖에서 소리가 나 알리기를 “나는 이미 서방으로 가네. 자네는 잘 있다가 나를 따라오게.” 라고 하였습니다. 엄장이 문을 밀치고 나와 바라보니 구름 위에서는 하늘 음악 소리가 들리고 광명이 땅에 뻗쳐 있었습니다.

이튿날 그가 광덕의 거처로 찾아가 보니 광덕이 과연 죽어 있었습니다. 이에 그의 아내와 함께 유해를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는데, 그 일을 마치자 엄장이 광덕의 부인에게 말하기를 “남편이 죽었으니 나와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하자 부인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머물러 있다가 밤이 되어서 정을 통하려고 하니 부인이 응하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대사가 정토를 구하는 것은 나무 위에 올라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엄장이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 “광덕이 이미 그러하였는데 나라고 해서 안 될게 무엇인가?” 라고 하니, 부인이 말하기를 “남편과 나는 10여 년 동안을 살았지만 하루 저녁도 같은 침상에서 잔 적이 없는데 하물며 그 몸을 더렵혔겠습니까? 그 분은 다만 매일 밤이면 단정하게 앉아서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외우고, 혹은 십육관을 지음으로써 관이 이미 익숙해져 달빛이 창으로 들어오면 때때로 그 빛을 타고 가부좌를 하였습니다. 이처럼 정성을 다 하였으니 비록 서방으로 가고자 하지 않는다 한들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저 천리를 가고자 하는 자는 한 걸음으로 알 수가 있는데 지금 대사의 관은 동방으로 갈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서방은 알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엄장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물러나와 급히 원호 스님에게 가서 왕생하는 법을 물으니, 원호 스님은 쟁관법을 지어서 일러 주었습니다. 엄장이 이에 뉘우치고 스스로를 꾸짖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관을 닦고 또한 극락으로 갔습니다. 광덕은 일찍이 원왕생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달아, 이제

서방까지 가시나이까

무량수불게 말씀 사뢰소서

맹세 깊으신 무량수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원왕생 원왕생 하며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사뢰주소서

아 ~ 이 몸 버려두고

사십팔 대원이 다 성취되실까


참으로 간절하고도 그윽한 노래입니다. 원왕생 원왕생을 부르며 서쪽으로 넘어가는 달에 부쳐 아미타불이 세운 사십팔 대원을 잊지 마시고 서방정토에 인도해 달라는 간절하고도 대틋한 사문 광덕의 모습이 눈에 선히 보이는 듯합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5권 감통편 광덕,엄장 조에 실려 있습니다. 삼국유사 속의 설화,향가,일사와 같은 형식의 많은 이야기들 대부분이 불교적 소재와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다는 것은 대중스님들께서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 중에서도 미타 정토 왕생에 대한 강한 발원이 담겨있는 예는 앞서 이야기 해 드린 광덕의 원왕생가 말고도 천한 노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일념으로 염불하여 현신 왕생을 성취한 욱면 낭자 이야기와 젊은 나이에 요절한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생사에 대한 무상함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 해결과 구원을 미타찰에의 염원을 발하는 것으로 쓰여진 월명 스님의 제망매가가 있습니다.

정토란 부처님께서 상주하시는 청정국토를 말하는데 이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아미타 극락정토가 있고 약사여래의 정유리세계를 말하는 약사정토가 있으며 보타낙가산 관세음보살이 계시다는 관음정토가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비로자나 여래의 연화장세계, 즉 화엄정토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장 대표적인 정토로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미타 부처님을 간절히 부르면 누구나 왕생할 수 있다고 믿는 미타정토입니다.

아미타불의 아미타를 범어로 표기하면 아미타유스(Amitāyus), 아미타바(Amitābha)의 두 가지로 쓰여지는 데 이 중 아미타유스는 무량한 수명을 뜻하는 무량수로 번역되고 아미타바는 무량한 빛을 뜻하는 무량광으로 번역됩니다. 이 한량없는 빛은 부처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내 안에 감춰져 있는 영원한 생명력이 무량수요 내 스스로가 능히 발현시킬 수 있는 신령스럽고 밝은 작용이 무량광인 것입니다.


대중스님!

저는 오늘, 넓고 넓으며 밝고 밝으며 또한 한량이 없는 미타정토 세계를 삼국유사라는 오래된 책 속에서 아주 단편적으로 찾아보았는데요, 아미타부처님의 상주 설법이 펼쳐지고 있는 그 곳에 태어나는 자는 모두가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지위를 얻어 성불을 보장받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성불을 보장받을 수는 없겠지요. 오직 한 마음, 바로 일심으로 정진하는 것입니다.


정진 여일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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