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입측오주를 알면(진응스님)

운문사 | 2006.04.03 10:33 | 조회 4165

안녕하십니까? 화엄반 진응입니다.

‘일상생활이 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별한 수행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행도 하나 하나가 바로 수행과 직결된다는 뜻입니다. 행동거지 하나에도 마음 다함이 평상도 이듯 저는 오늘 우리의 생활과 떼어 놓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해우소에 관한 입측오주에 대해 대중스님들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불가에서는 화장실이라는 일반 언어 대신 근심을 푸는 장소라는 뜻의 ‘해우소’, 또는 깨끗한 복도라는 의미의 우리가 쓰는 ‘정랑’이 있습니다. 법당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예절이 아니라 정랑을 드날들 때에도 수행자는 자신을 놓치지 않는 예의범절을 갖추어야 합니다. 초기 계율서인 사분율에서는 부처님께서는 출가한 비구스님들에게 정랑에서의 예법을 제시하는 변측법이 있는데요.

그 내용인즉, ‘해우소에 갈 때는 풀(휴지대용입니다.)을 가지고 가고, 노크를 하던지 기침을 하여 사람이나 사람이 아닌 무리가 알게 하고, 물그릇에 물을 부어 손을 씻고 다음 사람을 위해 그만큼 남겨 두어야 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후에는 이러한 정랑 예법이 민간 신앙과 결합되어 정랑 신까지 등장하여 조심성을 더욱 강조하는데요, 그 예가 정랑에서 넘어지면 정랑신이 미워하여 떡을 해서 대중 스님들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치문 시절 상반스님이 떡 공양을 많이 해서 제법 많이 먹었습니다.

정랑의 법도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행 방편으로도 연결됩니다. 중국 청규의 한 종류인 입중수지에서는 해우소 가는 자는 모름지기 입측, 세정 등의 진언을 외우라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 주를 염하지 않으면 혹 대해의 물로 금강의 세계를 다 씻는다 해도 깨끗하지 못할 것이요, 가사를 착용하거나 경을 볼 수 없을 것이라 하고, 또 불가나 민가에서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하면 정랑에는 측신과 담분귀가 있는데, 입측오주를 하지 않고 들어가면 담분귀가 똥을 먹다가 미처 비킬 새도 없이 똥을 그대로 뒤집어써서 화를 내며 똥 누는 이의 배를 걷어차 배탈이 나게 만든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입측오주를 석문의범에 주해서 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랑에 들어갈 때는 손가락을 세 번 튕기면서 입측진언, ‘옴 하로다야 사바하’라고 염하고, 볼 일을 본 후 변을 씻거나 닦아 낼 때 하는 세정진언, ‘옴 하나마리제 사바하’를 염하고, 손을 씻으면서는 세수진언, ‘옴 주가라야 사바하’를 염하고, 다시 더러움을 버리고 난 뒤에는 거예진언, ‘옴 시리예 바혜 사바하’를 염하며, 마지막으로 법당에 들어갈 때는 정신진언, ‘옴 바아라 뇌가닥 사바하’를 합니다. 이렇게 입측오주를 외워야만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고 마음의 여유도 생기며 또한 측신들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해우소에 관한 고승의 얘기가 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인 도선율사는 계행이 청정하기로 이름난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스님은 길을 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졌는데, 아차 하는 순간 누군가가 와서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냐 물었더니 북방 비사문천왕의 아들, 장경이라고 하며 스님의 계행이 청정하여 모시고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넘어지기 전에 잡아주어야 되지 않느냐고 스님이 물었더니, 스님께서 입측오주를 하지 않아 잘 닦아도 몸에서 구린내가 남아 30리 밖에서 따라다닌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도선 스님은 입측오주를 빠뜨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중스님! 입측법은 부처님의 삼천위의 팔만세행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출가행인들은 부처님께서 행하신 바가 아니면 행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마땅히 부처님의 맏아들이요, 인천의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조그마한 행동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랑 가는 길, 짧으면서도 긴 길입니다. 그 길을 무심코 가지 말고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정진 여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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