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일상어의 어원(경담스님)

운문사 | 2006.04.03 10:35 | 조회 5420

안녕하세요, 화엄반 경담입니다.

제가 오늘 하고자 하는 법문의 내용은 실생활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 말의 어원조차 잘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해서 몇 가지만 선별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말은 70%가 한자어로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한자어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 우리말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이 도저히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도무지’라는 말을 합니다. 이 도무지란 말의 어원은 조선시대에 사사로이 행해졌던 형벌인 ‘도모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도모지(塗貌紙)란 물을 묻힌 한지를 얼굴에 겹겹이 착착 발라 놓으면 종이의 물기가 차차 말라감에 따라 서서히 숨을 못 쉬어 죽게 되는 형벌입니다. 끔찍한 형벌만큼이나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뜻으로 현재 쓰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조카라는 말의 어원입니다. 이 조카라는 말의 어원은 중국의 개자추(介子推)로부터 시작되는데, 개자추는 진나라 문공이 숨어 지낼 때 그에게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면서까지 그를 받들던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황위에 오르게 된 문공이 개자추를 잊고 그를 부르지 않자, 이에 비관한 개자추는 산속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나무 한 그루를 끌어안고 타 죽어버렸습니다. 그때서야 후회한 문공이 개자추를 끌어안고 죽은 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나막신을 만들어 신고는 족하(足下)! 족하! 하고 애달프게 불렀습니다. 문공 자신의 사람됨이 개자추의 발아래에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여기서 생겨난 족하라는 호칭은 그 후 전국시대에서는 천자족하, 대왕족하 등으로 임금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다가 그 이후에는 임금의 발아래에서 일을 보는 사관을 부르는 호칭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다가 더 후대로 내려오면서 같은 나이 또래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은 형제가 낳은 아들딸들을 일컫는 친족호칭으로 변한 것입니다.

다음은 나사모양으로 되어 있는 늘었다 줄었다 탄력성이 있는 철을 가리키는 말, 용수철의 어원은 상상속의 동물인 용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용의 수염이 탄력성이 아주 강하다고 합니다. 새로 개발된 탄력성 있는 철사가 마치 용의 수염처럼 튀는 성질이 강하다고 해서 용수철(龍鬚鐵)이란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우리말 중에는 한자어에 기원을 둔 말뿐만 아니라 일제치하 중에 전래된 일본말, 개화기 전후로 유입된 외래어들도 많이 있습니다. 먼저 일본한자와 일본어에 기원을 둔 우리말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를 이르는 말로 ‘간발의 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자 그대로 머리카락 하나 만큼의 차이라는 뜻인데요, 아주 작은 차이를 이르는 말입니다. 뜻은 변하지 않고 그 음만 우리 식대로 따온 말입니다. 우리말로 종이 한 장, 터럭 하나 차이로 바꿔 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뜨거운 물을 보관할 때 쓰는 보온병을 다른 말로 ‘마호병’이라고 합니다. 이 ‘마호’ 라는 말은 마법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마호병이란 곧 마법의 병이한 뜻인데 오랫동안 보온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마법의 병이란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걱정을 들었을 때 쿠사리를 먹었다고도 하죠, 이 ‘쿠사리’의 어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쿠사리는 걱정이나 꾸중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본래 뜻은 썩은 음식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음식이 귀한 시절에 음식을 썩히는 것처럼 큰 걱정거리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음식을 썩힌 사람은 당연히 구박이나 꾸중을 들었던 것인데요, 이것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입니다.

우리가 적삼 속에 입고 있는 메리야스의 어원입니다. 대부분의 외래어가 영어인 걸로만 알고 있는데 메리야스의 어원은 스페인어 메디아스에 있습니다. ‘메디아스’가 메리야스로 발음 전환된 것인데, ‘디’와 ‘리’는 서로 곧잘 바뀌는 음이어서 메디야스가 메리야스로 바뀐 것입니다. 이 메디아스는 양말을 뜻하는 말로서 우리나라 개회기 때만 해도 양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는데요, 이 메리야스의 특징은 입거나 신는 사람에 따라서 늘어나고 줄어들어서, 현재는 본래 뜻이 확대되어서 면사나 모사로 신축성 있게 촘촘히 짠 직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운문사 만세루에서 얼마 전에 실시했던 결식아동 돕기를 위한 바자회는 너무나 성황 했던 나머지 하루 만에 끝나버렸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말 ‘바자회’의 어원은 원래 페르시아어인 공공시장을 가리키던 말, ‘바자(bazzar)’에서 온 말입니다. 이 말이 페르시아를 거쳐 아라비아, 터키로 퍼져나가서 이제는 전 세계에서 널리 쓰는 공용어가 됐습니다. 오늘 날에는 자선을 목적으로 한정된 기간에만 여는 행사시장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 여름에 가장 많이 가지고 다녔던 물건 중에 하나가 조로인데요, 작년에는 올 해만큼 넉넉한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물을 주러 다녀야만 했습니다. 이 ‘조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로’는 화초 등에 물을 주는 원예기구로써, 포르투칼어인 jarra에서 온 말입니다. 플라스틱이나 양철 등으로 만든 통에 대롱 모양의 도관을 붙여 그 끝으로 물이 골고루 나오게 되어 있는 물뿌리개 인데, 많은 사람들이 일본어에서 온 말이라 여기기 때문에 얘기해 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경상도 고유의 방언으로 자리 잡은 ‘가시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경상도에 와서 가정 적응하기 힘든 말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말은 신라의 화랑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는데, ‘가시’는 본래 꽃의 옛말이고 ‘나’는 무리를 뜻하는 ‘네’의 옛 형태에서 온 것입니다.

신라시대 화랑을 가시나라고 했는데, 가시나의 이두 식 표기인 화랑에서의 화는 꽃을 뜻하는 옛말인 가시에 해당되고, 랑은 ‘나’의 이두 식 표기이므로 가시나는 즉 ‘꽃들’이라는 뜻입니다. 화랑이 처음에는 처녀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기 때문에 처녀아이를 가시나로 부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말의 어원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법문을 준비하면서 나름대로 공부가 많이 되었는데, 대중 스님들께서도 그러셨습니까? 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연원을 두고 있겠습니까? 날마다 용수철 같은 신심으로 퇴굴치 않는 정법의 수행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twitter facebook
댓글 (0)
주제와 무관한 댓글, 악플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