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복(지욱스님)

운문사 | 2006.04.03 12:37 | 조회 3059

하늘보다 더 높이 떠 있는 뭉게구름과 매미울음 소리에 가을이 번져 나오는 이 시절에 차례법문을 하게 된 치문반 지욱입니다.

출가인 이라면 누구나 행자시절에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 중의 하나가 “ 행자 때 지은 복으로 평생 중노릇 한다.” 라는 말일 것입니다. 제가 운문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이 불이문을 지나면 좋은 글귀를 적어 놓는 알림판에

“나는 중생을 위하여 복을 지으리라. 복은 모든 것 중에 으뜸이니 이 복의 힘으로 나는 중생을 제도하리라.”

라는 글귀였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내가 얼마나 복이 부족하면 가는 곳마다 복 지으라는 말만 만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행자 때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가 왜 행자 때 지은 복이 평생 중노릇할 수 있는 보장성 보험일까 라는 생각에 어른 스님께 여쭤보면 “때가 되면 안다.” “많이 알면 다친다.”라는 말씀뿐이었습니다. 무엇을 여쭤 봐도 “많이 알면 다친다.”라는 이 말이 꼭 무슨 모범답안 같았습니다. 그래서 네 나름대로 생각한 것이 행자 때는 몸과 마음이 오직 부처님만 생각하는 신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텅 빈 마음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무량대복이 되어 중노릇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복은 얼만큼 언제까지 지어야 할까요? 물론 성불하는 그 순간까지겠지요. 어떤 눈 먼 사람이 바늘귀에 실을 꿰어 달라고 부탁하니 부처님이 선뜻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제자가 굳이 그 일을 안 하셔도 되는데 하신 연유를 여쭈니 복을 짓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또 옛말에 ‘복이 없으면 한강물이 모두 녹두죽이라도 깨진 쪽박조차 없어서 못 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복혜쌍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복의 밑받침이 없으면 지혜가 열리지 않아 성불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은 복을 새지 않게 잘 유지 관리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주물을 함부로 쓰고 낭비하거나 음식을 제대로 거두어 먹지 않거나 소임을 제대로 살지 못해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부드러운 말로 타인을 감싸 안기보다는 예리한 말로 상대방 마음을 상하게 하여 힘들여 지은 복을 감하면 이것은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일 것입니다.

생명이 있건 없건 내 보살핌을 받은 모든 중생이 나의 복 밭입니다. 우리는 무루복 보다는 유루복을 더 많이 짓습니다. 하지만 비록 유루복을 짓는다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한에서 무한으로 재창출할 수 있는 것이 수행자의 능력입니다. 여하튼 유루복이든 무루복이든 무조건 많이 지어야 합니다. 복도 복 있는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했습니다. 무쪼록 치문의 길을 걷는 모든 수행자들이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짓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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