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승려의 힘(상연스님)

운문사 | 2006.04.10 10:51 | 조회 2712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나무아미타불


국토의 티끌을 다 헤아려 알 수 있고

대해 가운데 물을 다 마실 수 있고

허공 가히 헤아리고 바람 가히 맬 수 있을지라도

부처님의 공덕은 다 설할 수 없음이라.


티끌을 헤아리고 대해의 물을 허공을 헤아리고 바람을 잡아매는 일도 사실 불가능한 일이지만 부처님의 공덕에 비한다면 오히려 다할 수 없습니다. 그런 부처님의 공덕은 불가설 불가설이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들은 자부심과 진실된 믿음, 곧 신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자신이 일으키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영원한 진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에 끄달려 집착하고 탐해서 힘들어합니다. 그렇다면 괴로운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곳에 자리한 대중스님이 아는 생·노·병·사·애별리고·원증회고·오음성고·구부득고,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모든 것들이 고통입니다. 더구나 부처님의 말씀을 진실로 믿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며 나태한 자신과 타협하고 스스로를 속여 탐·진·치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선가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어느 절 조실스님께서 누각에 앉아 있다가 사미스님 둘이 나무 밑에서 얘기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천신이 내려와 맑은 향기를 내뿜으며 찬탄을 하더랍니다. 조실스님도 처음 보는 것이었죠. 그 광경이 너무 좋아서 계속 바라보니 관세음보살께서 뭐라고 자꾸 타이르고 그러다 안 되니까 그냥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마왕파순의 권속들이 와서 그쪽으로 오라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조실스님께서 깜짝 놀라 사미스님을 불렀습니다. 너희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자 사미스님은 별일 없었다고만 대답했습니다. 내가 본 일이 있어 그러니 말해보라 하니 하는 말이, “예 기왕 부모님 가슴에 못을 막아두고 출가했으니까 이러쿵저러쿵 망상 하지 말고 저의 색깔과 저의 사상을 분명히 해서 오로지 도를 위해서 한평생 바칠 것이지 그 소중한 부모까지 버려두고 와 다른 것은 시비 안 한다. 오로지 도 닦는 일 밖에는. 금생에 안 되면 다음 생에 다음 생에 안 되면 또 다음 생에 라도 도를 이루겠노라고, 부모 친척 죽어 축생으로 태어나면 잡아먹고, 잡아먹는 윤회를 반복하며, 그런 중생계에서 벗어나겠다고 쉽게 되지 않는 것이 공부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도를 구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스님은 나는 신경성 위장병이 있어 금생에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생에 공부하겠다고 했습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똑 같은 몸일진댄 한 사람은 발심해 보리심을 발하여 하늘선신이 내려와 찬탄을 했고 한 사람은 실망하고 좌절했습니다. 좌절이 가장 큰 살생입니다. 모기, 파리 안 죽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내 신심 떨어지는 것보다 더 큰 살생은 없습니다.

나는 금생에는 인연이 없는 것 같으니 속가에 가서 몸을 치료하고 다음 생을 기약해 보지만 다음 생에 그 병 안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넘어야만 될 장애인 것입니다. 누가 장애물을 제거해 주겠습니까? 금생에 안 되는 것은 금생에 극복해내야 합니다. 자신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삼천 대천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오로지 자신뿐 아무도 없습니다.

서암스님 법어집 「소리 없는 소리」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밖에 나를 간섭할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것입니다.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데 스스로 헤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을 수 없을 정도의 큰 힘이 자신에게는 있습니다. 그 힘을 찾아 쓰지도 않고 나는 안 된다며 지레 겁먹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힘을 찾기 위해서는 세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첫째는 마음으로 지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겠지요. 둘째는 의무로 하는 것입니다. 큰 방에서 편히 경을 볼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요. 병고치는 약을 알려주어도 모르기 일쑤입니다. 수 억겁을 번뇌 망상으로 살아 왔으니 금방 바꾸려 하는 것은 탐심이고 치심일런지도 모르겠지만, 천지의 은혜가 들어있는 한 방울 물의 그 몇 배나 더 많이 먹고 누리는 우리는 의무로라도 예불, 울력, 공양시간, 경보는 시간을 지극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될 때까지 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차츰차츰 번뇌를 여읜 멋진 수행자가 될 것입니다.

셋째는 마음, 의무가 안 되면 형식이라도 해야 합니다. 마음을 놓친 걸음걸이, 말소리, 일상의 모든 일은 사소한 것 같지만 공부하는 이들에게 망상을 일으키게 만들고 그런 일들이 자꾸 반복되다 보면 안정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들떠서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되고, 자신의 혜명을 끊어 시방이 꽉 막힌 무명 속을 돌고 돌 것입니다.

형식, 다소 거부감 생기는 말이지만 형식 속에서 장엄함과 가지런한 위의를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생소한 것들도 자꾸 듣고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져 쉬워지듯 불법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반복이 중요합니다. 어려울지라도 한 번 또 한 번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대자비로 부처님과 중생을 분별하지 않는 수행의 힘이 생긴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숨겨진 힘을 찾아내 대중 모두에게 든든한 힘 나누어 줄 수 있는 큰 버팀목 같은 멋진 수행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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