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향기로운 사람 (유신스님)

운문사 | 2005.12.26 17:26 | 조회 2809

3월은 새로운 시작의 달입니다.

대중스님! 봄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계십니까?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자연이 잔뜩 움츠리고 얼어있던 황량한 운문의 도량 곳곳에 따스한 봄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사집반 유신입니다.

대중스님, 지금 이곳, 이 순간이 더없이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지금 이곳 이 순간만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계십니까?

저 사람만 없다면, 저 사람만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준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여기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요.

미국의 한 대학교수가 서로 다른 열여섯 종의 초목을 일정한 넓이의 땅에 심어 보았습니다. 한 곳에는 한 종류만 심었고 다른 땅에는 2종, 또 다른 땅에는 4,8,16종씩 임의로 섞어서 심었습니다. 어떤 식물은 홀로 자라게 하고 또 어떤 식물은 여러 종이 함께 모여 자라게 했던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뜻밖에도 16종이 모여 사는 땅의 생산성이 한 종의 식물이 자란 땅에 비해 세 배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홀로 자란 식물이 그 땅의 자양분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가장 튼실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의외의 결과에 놀란 학생들에게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식물들은 영양분과 공간, 햇빛 등을 서로 나눠가면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16종의 식물이 모여 서로 나눠가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입니까? 운문사는 사미니 강원 중에서 가장 많은 대중이 공부하는 그야말로 대중처소입니다. 많은 대중 속에서 자신의 모난 면을 둥글게 다듬어 보겠다고 저 역시 이곳 운문사에 오기는 했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의 경계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물론 책 가득 쏟아져 내는 한자들을 감당해야 하는 수업시간. 날마다 닭이 알을 낳듯 새로운 울력 거리가 끊이지 않는 울력 시간들 역시 쉽지만은 않지만 정작 제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대중 속의 나, 대중과의 화합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중 속에서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부처님 모시듯 해야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소소한 경계에 부딪치노라면 어느새 끝없는 분별과 진심瞋心속에서 허덕이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많은 경전에서는 진심嗔心은 공덕을 겁탈하는 도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에 말하기를 "불자가 내는 한 번의 嗔心은 모든 악을 뛰어 넘어 한 번 嗔心을 내면 백 천 가지 장애를 받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①보리를 보지 못하는 장애,②법을 듣지 못하는 장애, ③악도에 태어나는 장애,④병이 많은 장애, ⑤비방을 받는 장애, ⑥지혜가 없는 장애, ⑦악지식을 가까이 하는 장애 등의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나와 잘 맞고 나를 이해해 주는 도반만을 고마워하고 내게 있어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나를 괴롭게 하는 스님, 역시 내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하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중스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아십니까?

사람은 남에게 무엇인가를 베풀 수 있고 그것으로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자신을 향기롭게 하고 남에게 그 향기를 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결코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멀리 있지도 않습니다. 발우 자리에서 옆 스님을 생각해 새 반찬을 조금 더 먹어줄 수 있고 지대방에서 쉬고 싶은 도반을 위해 몸을 조금 돌려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조그마한 배려의 마음, 그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조금 있으면 운문사 나무인 후박나무 꽃향기가 온 도량을 가득 향기롭게 할 것입니다. 향기가 있는 건 비단 꽃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도 그만의 독특한 향기가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올 봄에는 후박 꽃향기와 같은 맑고 부드러운 향기를 나뿐만이 아닌 내 주위까지 전할 수 있는 그런 향기 가득한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날마다 좋은 날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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