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이 깃든

호거산 운문사

차례법문

운문사승가대학 학인스님들이 4년 재학 동안 단 한번 차례대로 법상에 올라서 대중에게 법문한 내용입니다.

군살 빼기 (여정스님)

운문사 | 2005.12.26 17:32 | 조회 2659

사교반 여정입니다.

스님들의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요. 여기저기에 빼야 할 살이 많으시다구요?

쌀 한 톨의 시은의 무게가 일곱 근이라는데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모든 음식과 매일 입는 옷, 매일 보는 경책, 생활용품 등 어느 것 하나 단월의 피와 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 시주의 피땀으로 치장한 우리의 몸무게는 달아 질까요? 단월의 시은을 수용할 만큼 복을 지어 놓았는가를 생각해 보고 또 생각해 봅니다.


출가 직후 힘들이지 않고 옷과 책, 생활용품 등을 얻었을 때의 그 어색함과 과연 받아도 되는지를 고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받아쓰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봅니다. 또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만 소유하면 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사교가 되면 청풍료보다 사물함이 작다는 얘기를 듣고 최대한 짐을 줄이기 위해 점검을 했습니다. 제가 상당히 부자더군요. 계절마다 두 벌이면 족할 것을 무엇이 그리도 많은지. 조금 좋아 보이는 옷이 있으면 받아놓고, 새 옷은 나중에 졸업하면 입어야지 하는 생각에 받아 놓고, 가지가지 이유로 챙겨 놓은 옷이 많이 있었습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챙길 필요가 없는데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나 봅니다. 최고로 좋은 것들을 공양하려는 단월의 덕택에 우리는 좋은 옷, 맛있는 음식, 좋은 과일, 좋은 차 등 제일 좋은 것만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새 몸은 좋은 옷, 부드러운 촉감을 원하고 있고, 입은 맛있는 것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고급화 되어버린 혀끝도 문제지만 우린 또 많이 먹습니다. 많이 먹는 데는 스님들을 따라 갈 사람이 없을 겁니다. 특히 오늘 같은 별식이 있는 날은 위가 요술자루가 되어 아주 커집니다. 육식을 하지 않아서 영양결핍이 있을 거라는 잘못된 믿음 때문에 밥이 보약이라는 구호아래 많이들 먹습니다. 그 양의 반만 먹어도 생활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이 가뿐할 텐데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것이지 적게 먹어서 탈이 나진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오래 사는 장수촌에 가보면 장수의 비결은 특별한 음식이나 약이 아닌 바로 소식(小食)이라고 합니다.


공양시간, 참 시간, 때로는 넘치는 공양물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별식까지 포함해서 종류도 다양하게 먹습니다. 과연 우리가 이 많은 음식물을 받아먹을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은 채 말입니다.

또 공양을 하면서 반찬이 맛없다, 국이 싱겁다, 모양이 마음에 안 든다, 김치 길이가 짧다, 나물 길이가 길다 등을 논하는데 시은의 무게를 생각한다면 이 반찬이 밥상에 나올 때까지의 공력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농부의 피땀과 그 곁에 있던 수많은 생명의 희생과 또 그 야채가 운문사 후원에 오기까지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해야 할 것이며 대중 스님들이 이 음식을 먹고 도(道) 닦는 밑거름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리하는 사람들의 수고로움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옷에 좋은 음식에 우린 항상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고 있습니다. 춥고 배고플 때 도 닦을 마음이 생긴다 했건만 어느 세월에 도 닦을 마음이 날까요. 곧 장 검사기간인데요, 각자 점검을 하면서 필요는 없는데 아쉬운 마음에 가지고 있는 물건들과 수행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사치품과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살펴보심은 어떨까요.

여벌의 옷을 넉넉히 가지고 계신 분은 필요한 도반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공양 시간에 반찬 가지 수 조금씩 줄이고 밥 한 술씩 줄이며 먼저 단월의 시은을 생각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좋은 것 가지려는 마음과 좋은 것 먹고 싶은 마음 등.


수행자로써 경계해야 할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무게를 줄이는 것은 어떨까요. 혹 다른 것에도 시은을 남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둘러보심은 어떨까요.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은 은혜가 무거워 도를 덜고 떨어진 옷과 성근 음식은 반드시 시주의 공덕이 가볍고 음덕을 쌓으리라는 자경문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오늘 법문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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